강화산성(江華山城) 성돌이|43열린산악회
강화읍은 고려시대 몽골이 침입했을 때 잠시 도읍을 옮겼던 곳으로 이와 관련한 유적들이 많다. 강화산성(江華山城) 역시 그같은 문화유산으로 고려시대에 쌓은 산성이다.
고려의 성은 내, 외, 중성이 있었는데 외성은 현재의 강화성으로 둘레가 7,122m이고, 중성은 둘레가 5,381m로 1250년에 축성하였다. 성 주위가 원래 약 18km였으나 지금은 1,947m만 남아 있다.
▣ 답 사 지 : 강화산성(江華山城)성돌이
▣ 답사날씨 : 맑고 포근함
▣ 답사일자 : 2007. 02/07(수)
▣ 답사구간 :
제1구간 : 강화버스터미날-풍물시장-강화산성 남문-남산-덕신고-석수문-연무당터-서문-서문교
회-강화정수장 담장따라-북문-북산-강화중학교 담장따라-동문
제2구간 : 동문-강화경찰서-용흥궁
제3구간 : 용흥궁-고려궁지-남문-풍물시장-강화버스터미날
▣ 소 재 지 : 인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산3번지 일원(안내 016-319-7476)
▣ 소요시간 : 성곽 7.12km/2시간50분
제1구간 : 강화산성(2시간50분)
제2구간 : 용흥궁(10분)
제3구간 : 고려궁지(30분)
▣ 입 장 료 : 없슴
▣ 가 는 길 :
전철 신촌역 7번출구에서 직진 고가철도 직전에 있는 그랜드마트 뒤쪽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날이나,
영등포 경방필 건너편에서 강화행 버스를 타고 강화터미널 하차.
①신촌-강화: 05:30분∼21:30분까지 10분 강격으로 1시간30분 소요되며 4,900원
②영등포-강화: 05:45, 06:10분∼22:10분까지 30분 간경으로 1시간30분 소요되며 4,700원
③강화시외터미널에서 건너편 풍물시장을 구경하며 빠져나오면 남문과 연결된 성곽이 보인다.
강화도의 강화읍을 에워싸고 있는 고려 시대 이래의 성곽으로 강화읍과 내가면·하점면 일대에 걸쳐 있으며 성문 4개와 첨화루(瞻華樓)·안파루(晏波樓)·진송루(鎭松樓)의 문루, 암문(暗門)·수문(水門)·장대(將臺) 등의 방어 시설을 갖추고 있다. 고려말 몽고군의 침입으로 백성과 국토가 유린되자 1232년(고려(高麗) 고종(高宗)19) 6월 대몽항쟁을 위하여 강화로 도읍을 옮기고, 궁궐을 짓고 도성(都城)을 축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 왕궁과 도성시설이 완비된 것은 아니고, 1234년 1월부터 도성과 궁궐 및 백사 공해(百司公해)를 송도(松都)의 것과 방불하게 만든 것이다.
이때의 성은 내성(內城)·중성(中城)·외성(外城)이 있었는데, 내성은 주위 3,478척의 규모로 토축이었고, 중성은 1250년에 축성된 것으로 둘레가 2,960여간(間)으로 8개의 성문이 모두 개경(開京)의 도성(都城) 성문의 이름을 본뜬 것이다. 즉, 동쪽에 선인문(宣仁門)·서쪽에 선기문(宣祺門)·남쪽에 태안문(泰安門)·북쪽에 북창문(北昌門)을 두고, 그사이 방향인 동남에 장패문(長覇門)·서남에 광덕문(光德門)·서북에 선의문(宣義門)·동북에 창희문(彰熙門)을 둔 것이 그것이다.
외성은 중성을 보다 외곽에서 수비하기 위하여 해안의 배가 건너는 곳들을 차단하기 위한 대규모의 것으로, 1233년부터 축조하기 시작하여 1235년 12월에 각 주현(州縣)의 일품군(一品軍)을 징발하여 강화의 동쪽 해협을 따라 3만 7,070척에 이르는 대대적인 축성 공사를 실시하였다. 이 외성도 토성으로 되었으며, 몽고군이 바다를 건너 공격하지 못한 가장 중요한 방어 시설이자 고려의 강도(江都)정부가 39년간 육지로부터 보급 물자를 안전히 지원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1270(원종(元宗)11)년 몽고와의 강화 조건으로 내성과 외성까지도 모두 헐게 하였다.
조선왕조의 초기에 읍성을 다시 축성하면서 고려의 도성이던 강화성은 변형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청군(淸軍)에 의해 다시 파괴되었고, 1677년(숙종(肅宗)3) 강화유수(江華留守) 허질(許秩)이 대폭 개축하여 고려 시대의 규모로 넓혀 석축하였다. 1709년(숙종(肅宗)35) 강화유수 박권(朴權)이 중수하였고,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계속적인 보수공사가 있었다. 이때 체성(體城)은 돌로 견고하게 쌓았고 여장(女墻)도 설치하였으나 여장은 모두 무너졌다. 성내에는 남장대(南將臺)·북장대(北將臺)·서장대(西將臺)가 있었고 수문이 두 개 있었다. 남문은 안파루(晏波樓)·북문은 진송루(鎭松樓)·서문은 첨화루(瞻華樓)·동문은 망한루(望漢樓)라 하였으나, 동쪽 성벽은 시가지화 되었다. 성벽은 남북쪽의 산자락으로는 잘 보존되어 있다.
북문 진송루 누각은 병화로 헐리고 석축만 남아 있던 것을 1976년에 강화중요국방유적복원 정화사업으로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서문 첨화루는 숙종 38년(1711)에 당시 유수 민진원에 의해 복원되었는데 1955년 5월 많은 비로 인해 붕괴 되었던 것을 1975년 문루와 성곽의 일부를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남문 안파루는 서문과 같은 시기에 복원되었다. 그러나 동문 망한루는 2003년에야 복원을 시작하여 2004년 8월에야 마쳤다.
강화읍 北山을 일컷는 말로 개성 송악산의 이름을 따 가지고 그것을 송악산이라고 하며 옛날에는 임금이 어딜 가든 지명의 이름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고려궁지와 강화산성북문, 오읍약수가있다
강화읍 남산리에 있으며 봉수가 있고 수륙암(水陸菴). 2개의 약수터 그리고 청수암과 용해사가 있다
강화읍 관청리 뒷산이며 정상에 위치한 전몰군경의 충혼탑과 충혼비가 있으며, 고려 고종이 태자를 몽고에 인질로 보낸 후 태자를 생각하며 북녘을 바라보았다는 산이다.
▣ 강화산성(江華山城) 성돌이를 마치고
북한산성과 서울산성, 수원화성의 답사를 끝내고 이제는 강화산성을 답사하고 싶어 집을 나선다. 서울 영등포나 신촌터미날에서 강화행 버스가 자주 없기 때문에 사전에 버스시간을 확인하고 가는게 좋다. 그래도 교통량 때문에 30분 정도는 기다릴 생각으로 느긋해지는 게 좋을 것이다.
영등포 경방필백화점 건너편에서 30분을 기다려 강화행(강화운수 1번)버스를 타고 강화로 달린다. 아침시간이라서 인지 사람이 별로 없어 거침없이 달려 강화터미날에 도착한다.
터미날에서 나와 오른쪽 건너편 풍물시장을 가로지르면 남문으로 이어지는 성곽을 만난다.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강화산성 성돌이는 시작된다. 몇걸음 걷다보니 남문이다. 서울산성의 숭례문, 흥인지문 등과는 그 규모가 매우 작고 단순하지만 나름대로 아름다움과 독특함이 있다. 그러나 너무 가까이 주차장이 있어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강화산성은 "고려궁지"를 중심으로 남산과 북산, 견자산을 잇는 성곽이다. 특징은 낮은 경사를 이용해서 밖으로 석축을 쌓고 안에서 흙으로 쌓는 방식인것 같다. 지금은 북문(眞松樓), 서문(瞻華樓), 남문(按波樓), 동문(望漢樓)이 있는 부분 20-30여 미터만 복원이 되었고, 그 외 거의 부분이 복원되지 않아 원형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남문에서 남산을 거쳐 서문까지 이르는 길은 전 구간 석축이 거의 남아 있고 사람들이 많이 이용해서 인지 산책길이 나 있다. 강화성 둘레가 7.12km 라는데 구간마다의 이정표가 없어 아쉽고, 산책길이 정비 되지 않아 아쉽다.
서문이 있는 곳엔 석수문과 연무탕터가 있는데 남문보다 더 넓은 공간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 한가지 흠이라면 성곽 바로 옆에 주차장이 있다는 것이다. 서문의 성곽은 유일하게 덕신고교에서 석수문을 거쳐 서문까지 약 200여 미터가 복원되어 있다.
서문을 지나면서 부터는 성곽을 따라 가야 하는데 성곽이 없어졌다. 성곽길로 추축되는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니 "서문교회"와 "동신교회"가 있고 성곽을 찾을 수가 없다. 성곽이 지나갈 만한 길로 추축되는 왼쪽으로 "서문교회" 뒷쪽 낮은 산으로 올라간다. 앞에 철조망이 가로 막혀 왼쪽으로 돌아 길이 아닌길을 찾아 철조망 반 바퀴쯤 도니까 강화정수장 입구가 나온다.
산세를 살펴 왼쪽 산으로 올라가 보니 어렴풋이 성곽이 있슴을 알 수 있다. 서문에서 북문까지의 성곽길은 아예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누군가 성돌이를 하는 사람들의 발길로 추축되는 성곽길이 어렴풋이 남아 있긴하다.
가면 갈 수록 성곽은 뚜렸해지고 성곽위로 길은 있으나 흐미한데 또 하나의 철조망이 앞을 가로 막는다. 수풀을 헤쳐 울타리를 또 다시 돌아간다. 한참을 돌아가면 뚜렷한 석축이 다시 보인다. 바로 "북문"과 이어진 성곽인 것이다.
북문.. 북문은 성문 자체가 아름다울 뿐만아니라 산속에 있어서 성곽과 주위의 나무 등이 잘 어우러져 너무 아름답다. 성곽길 중에서 서문에서 북문까지의 길이 제일 험하다.
북문에서 성곽을 따라 북산으로 오르는 길은 산책길이 잘 나 있다. 이길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성곽도 잘 보존되어 있고 길도 좋다. 다만, 북산에서 성곽을 따라 내리막길로 내려 왔는데 성곽이 보이지 않는다. 성곽의 방향을 알 수가 없다. 성곽의 윤곽으로 보이는 앞으로 계속간다.
그런데 아뿔사~~ 조금 전에 지난 온 성곽길이 다시 나온다. 지금 이곳에서 20분을 헤메고 있다.
되돌아 와 이번에는 남문 방향으로 짐작되는 왼쪽 주택가로 하산한다. 주택가에서 "동문" 가는 길을 물으니 친절하게 알려준다. 바로 앞에 있는 "강화중학교" 정문 옆에 동문이 있단다. 동문은 최근에 다시 복원되어 깨끗한 모습을 하고 있다.
북산에서 내려와서 부터 동문까지 구간과 동문에서 남문이 있는 강화 큰길까지도 성곽이 없다.
동문에서 지형을 살펴보니 앞에 보이는 "충혼탑"이 있는 조그만 산이 견자산이다.
동문에서 "고려궁지"를 먼저 보고 가기로 하고는 교육청과, 경찰서가 있는 이정표를 따라 걷는다. 경찰서 바로 옆에 주택가 한가운데 철종의 잠저였던 용흥궁이 있다. 용흥궁을 구경하고는 "고려궁지"로 이동한다.
강화산성, 용흥궁, 고려궁지 등은 걸어서 충분히 답사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 내에 모두 있어서 좋다.
"고려궁지"에 도착해서 잠심식사를 먼저 하고는 입장권을 사서 들어간다. 사람이 한명도 없다. 고려궁지... 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단조롭고 초라한 것 같다. 처음에는 보다 더 웅장 했을텐데....(?)
고려궁지를 나와 버스터미날로 향한다.
견자산을 거쳐야 하지만 성곽도 없고 충혼탑을 오르는 길 밖에 없으며 올려다 보면 다 보이니까 그냥 남문을 거쳐 터미날로 가기로 한다. 아침에 본 "남문"을 다시 보고는 성곽을 따라 큰 길로 나와 풍물시장에 들려 온갖 것을 구경하면서 터미날로 이동한다.
그냥가기 서운해서 인삼막걸리 한병 사들고는 신촌행 직행버스가 기다리고 있기에 올라탄다. 강화도에 안녕을 고하면서 서울로 출발한다.....^^&
▣ 강화산성(江華山城) 성돌이 구간별 소요시간
-. 07:30 영등포 경방필 건너편 버스탑승
-. 08:54 강화버스터미날
-. 09:05 남문
-. 09:43 남산(222m)
-. 10:02 덕신고교
-. 10:08 서문-석수문-연무탕터
-. 10:24 서문교회-강화정수장 담장
-. 10:57 북문
-. 11:10 북산(126m)
-. 11:20-11:40 성곽길 찾아 해메고
-. 11:50 강화중학교 후문
-. 11:55 동문
-. 12:08-12:18 용흥궁
-. 12:25-12:40 점심식사
-. 12:40-13:10 고려궁지
-. 13:35 풍물시장
-. 13:50 강화버스터미날
-. 13:55 강화버스터미날 출발
-. 15:30 신촌버스터미날
강화산성 성돌이는 이정표가 전혀 없어서 사전에 정보를 얻어 가는것이 좋다. 서문-북문까지는 성곽길이 거의 보이지 않아 애를 먹 을 수 있고, 북문을 지나 북산-동문가는 길이 애매해서 성곽의 흔적을 따라 가다가는 "고려궁지"로 빠지게 된다.
북산에서 동문을 찾아 내려와야 한다. 강화중학교 정문 옆에 있는 동문에서 앞에 보이는 충혼탑이 있는 산으로 다시 올라가야 한다. 이 산이 "견자산"이다. 견자산을 넘어야 남문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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