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계획

서울중구 중학천물길 청계천-삼청공원까지 6.4km 2019. 11/10

산솔47 2019. 11. 7. 17:54

서울중구 중학천물길 청계천-삼청공원까지 6.4km

2019. 11/10 일요일

 

중학천(中學川)은 경복궁 북쪽에 솟은 북악산의 남서쪽에서 흘러내려와 경복궁의 동문인 건천문 앞을 지나 지금의 문화체육관광부와 미국대사관 뒤쪽을 거쳐 청계천에 합류하는 길이 2.4km에 이르는 하천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청계천의 지천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하천이었으나 1957년 도시정비를 목적으로 복개되어 버렸습니다. 현재 중학천물길은 청계광장-세종로119안전센터까지 340m에 걸쳐 복원되어 있습니다.

이번모임은 중학천물길을 걸으면서 역사적인 장소와 건축물들을 둘러보고, 중학천의 발원지인 삼청공원영무정까지 6.4km를 걷습니다.

 

모임일자: 2019. 11/10(일요일)

만나는 곳: 10:00 지하철5호선 5번 출구에서 50m, 1, 2호선 4번 출구에서 250m 청계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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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천물길 청계천-삼청공원까지 6.4km/3시간

course

광화문버스정류장-청계천광장(0.3km)-중학천조형물-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느티나무100년쉼터-혜정교터-의정부터발굴현장-동십자각-경복궁건춘문-국립현대미술관-삼청동입구(2.3km)-복정(우물)-코리아목욕탕-금융연수원정문-번사창-칠보사(1.8km)-정조대왕샘물-삼청공원-삼청공원숲도서관-삼청공원영무정(1.1km)-삼청공원숲도서관-금융연수원버스정류장(0.9km)

 

중학천(中學川)

중학천(中學川)은 경복궁 북쪽에 솟은 북악산의 남서쪽에서 흘러내려와 경복궁의 동문(東門)인 건천문 앞을 지나 지금의 문화체육관광부와 미국대사관 뒤쪽을 거쳐 청계천에 합류하는 길이 2.4km에 이르는 하천이다. 조선시대에는 청계천의 지천(支川)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하천이었으나 1957년 도시정비를 목적으로 복개되어 버렸다.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高宗卽位四十年稱慶紀念碑)

사적 제171호인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高宗卽位四十年稱慶紀念碑)는 광무 6(1902)에 고종의 즉위40주년과 51세에 기로소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몸체의 앞면에는 순종의 글씨가 있으며, 비문은 윤용선(尹容善)이 짓고 민병석이 썼다.

혜정교터

혜정교는 교보문고 쪽에서 피맛골 쪽으로 건너는 다리였을 것이다.

사복시터(司僕寺址)

사복시(司僕寺)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사용하던 수레 말, 마구, 목장을 맡아보던 관청으로 궁중에는 내사복시, 도성에는 외사복시, 지방에는 목장을 두었다. 여기에 있던 외사복시는 1907년에 폐지되었다.

는 절사(), 또는 관청 시()자로도 쓰인다.

중부학당터(中部學堂址)

조선시대에 한성부에는 사부학당으로 중부, 동부, 서부, 남부에 설치한 중등교육기관이 있었다. 북부관광방(北部觀光坊)이었던 이곳에 중부학당(中部學堂)이 있었는데, 1894(고종 31)에 폐지되었다.

동십자각(東十字閣)

동십자각(東十字閣)은 광화문에서 연결되어 오는 경복궁 외궁성(外宮城)이 건춘문(建春門)을 향하여 꺾이는 부분에 세운 망루(望樓)로 석단(石檀)은 국초(國初)의 유구(遺構)로 추측되나 누각은 대원군 시대에 건립한 것으로 추측된다.

규모는 작으나 조화로운 예술적 조형미로는 경복궁내에서 뛰어난 건축물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건물은 궁성(宮城)의 동남모퉁이에 세웠던 망루와 같은 돈대(墩臺)의 기능을 갖고 있던 것인데, 궁성 원장(垣墻)이 헐리면서 현재와 같이 길가에 독립건물이 되었다.

십자각(十字閣)은 궁성전면 양모서리에서 세워 궁내 외를 감시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동쪽에는 동십자각(東十字閣)을 두었고, 서쪽에는 서십자각(西十字閣)은 두었는데, 서십자각(西十字閣)은 헐려버려 지금은 볼 수가 없다.

경근당(敬近党)과 옥첩당(玉牒党)

종친부(宗親府)는 조선왕조 역대 제왕의 어보(御寶)와 어진(御眞)을 보관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며 종실제군(宗室諸君)의 관혼상제 등 모든 사무를 맡아보던 관청이다.

종친부의 건물 중에는 경근당(敬近党)과 옥첩당(玉牒党)이 있었는데, 경근당(敬近党)은 왕실의 사무를 처리하던 곳이고, 옥첩당(玉牒党)은 고위 관리들의 집무처로 사용한곳이다.

이 두 건물은 1981년 정독도서관으로 옮겨졌다가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관을 건립하면서 원래의 위치인 지금의 자리로 이전 복원되었다.

장원서터(掌苑署址)

장원서(掌苑署)는 궁궐의 후원과 각지의 과수원을 관리하고, 궁중과 여러 관아에 과일과 화초 등을 공급하던 관아였다.

복정(福井Bokjeong Well)

복정(福井)은 물이 맑고 맛이 좋아 조선시대에 궁중에서만 사용했던 우물이다. 평상시에는 뚜껑에 자물쇠를 채우고 군인들이 지키며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게 했으나, 대보름에는 일반인도 물을 길을 수 있게 했다.

기기국번사창(機器局飜沙廠)

기기국번사창(機器局飜沙廠)은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내에 있는 조선말기근대식무기를 제작하던 기기창 건물로 한국은행이 소유자하고 있다. 19821217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었다.

기기국번사창(機器局飜沙廠)1884(고종 21)에 건축된 기기국(機器局)의 무기고인데, 건평 198쯤 되는 이 집은 장대석과 사괴석(四塊石)으로 된 토대 위에 세워졌으며, 겉은 회색벽돌로 벽체를 쌓았고, 붉은 벽돌로 견치형(犬齒形)의 띠를 두른 위에 왕대공지붕틀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해 맞배지붕을 이루고 있다.

출입문에는 아치를 틀었고 특히 정문은 화강석으로 꾸며졌으며, 측면문은 붉은 벽돌로 띠를 넣어 장식하고 있어서 매우 특이한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다.

일찍이 이곳 삼청동에는 군기시(軍器寺)소속이던 화약도감(火藥都監)이 있었고, 이에 딸린 화약고 별창(別倉)이 있었다. 따라서 별창자리에 번사창이 들어서면서 무기고를 겸한 화약제조소가 되었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세균실험실이 되었고, 광복 후 미군정 때는 중앙방역연구소, 정부수립 후에는 국립사회복지연구원으로도 쓰이다가 1970년에 한국은행소유가 되었다.

지청천장군집터

지청천장군은 만주에서 독립군을 양성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총사령관을 지낸 항일독립투사다. 이곳은 지청천장군의 집터다.

정조대왕샘물

정조대왕 샘물은 조선왕조 22대 정조대왕(正祖大王1752-1800)의 수라상에 진상되었다는 샘물이다.

옥호정터(玉壺亭祉)

옥호정터(玉壺亭祉)는 순조의 장인 영안부원군 김조순(金祖淳)의 제댁(第宅)인 옥호정(玉壺亭)이 있던 곳이다. 전해오는 옥호정도(玉壺亭圖)’에 그려진 일관석(日觀石)’ 각자(刻字)바위가 현재 북악산동쪽 산 중턱에 남아 있다.

영무정(詠舞亭)

서울 삼청동 삼청공원 안에 있는 영무정(詠舞亭)1960년대부터 동네아저씨들이 노천목욕장으로 이용하던 곳으로 서울 한복판에서 남자들이 노천에서 알몸목욕을 할 수 있다는 특이함 때문에 한여름이면 이색피서지로 일간지는 물론 생활정보프로그램에도 소개되기도 한 곳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민원이 늘어나기 시작해 2010년 쯤 부터 목욕을 금지했고, 최근에는 욕조도 철거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