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산 한양도성순성길 동대입구역-서울역까지 6.5km, 제2부 남산팔각정-서울역까지 3.0km
2021. 10/03 일요일
오늘은 단기 4354년 개천절이다. 오늘 걷고자하는 길은 서울남산을 중심으로 한양도성순성길 동대입구역-장충공원-한양도성-남산팔각정-국사당터-남산봉수대-잠두봉전망대-한양도성유적전시관-백범광장-서울역까지 6.5km다.
06:35-09:05
서울남산 한양도성순성길 동대입구역-서울역까지 6.5km/2:30분
course
동대입구역(6번)-장충단공원-장충단비-수표교-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일성이준열사동상-순국열사이한응선생기념비-유관순열사동상-3.1독립운동기념탑-춘강박승희기념비-국립극장-조택원춤비-김용환동상-남산북측순환로-남산팔각정-국사당터-목멱산봉수대터-잠두봉포토아일랜드-한양도성유적전시관-소월시비-퇴계이황선생상-다산정약용선생상-백범광장-이덕형선생집터-서울역(2번)
소요시간: 6.5km/2:30분, 평균속도(2.6km/시속)
남산팔각정
남산 국사당터(國師堂址)
국사당(國師堂)은 태조가 조선을 개국하고 서울로 수도를 옮긴 1년 뒤인 1395년에 남산산신을 목멱대왕으로 봉작하고, 목멱신사를 세워 국사당(國師堂)이라 하고 춘추로 초제(醮祭)를 지냈다.
본래 국사당(國師堂)은 서울 남산꼭대기(팔각정자리)에 있었으나 1925년 일본인들이 남산기슭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지으면서 국사당이 자기들의 신사보다 높은 곳에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전을 강요하면서 인왕산자락으로 이전하였다.
이전장소를 인왕산기슭으로 택한 것은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그곳에서 기도하던 자리라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목멱산봉수대(南山烽燧臺)
목멱산봉수대는 조선 태조 3년(1394)에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뒤 설치하여 갑오경장 다음해까지 약 500년간 사용되어 왔다. 남산의 옛 이름을 따서 목멱산봉수대라 하기도 하고, 서울에 있다하여 경봉수대라 부르기도 하였다.
잠두봉전망대
한양도성유적전시관
서울 한양도성은 조선왕조의 도읍지인 한성부(서울 옛 명칭)을 둘러싸고 있는 조선 시대 성곽으로 경계를 표시하고 방어하기 위해 쌓았다.
한양도성 들레에는 백악산(북악산), 목멱산(남산), 낙산, 인왕산 등 한양을 둘러싼 4개의 산 능선과 평지가 연결되어 있다.
남산의 한양도성은 1925년 일제강점기 일제가 남산에 조선신궁을 세우기 위해 허물어 버렸는데, 남산의 한양도성유적전시관은 그 동안 발굴조사(2013-2014)를 통해 드러난 성벽유적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소월시비
퇴계이황선생상
퇴계 이황선생은 조선 중기 주자성리학을 심화, 발전시킨 조선의 유학자로 자는 경호, 호는 퇴계, 퇴도, 도수이며 1548년 단양군수, 풍기군수를 지내다가 이듬해 병을 얻어 퇴계의 서쪽에 한서암을 짓고 공부했다.
이후 성균관대사성으로 임명되고 여러 차례 벼슬을 제수 받았으나 대부분 사퇴했다. 1560년 도산서당을 짓고 독서, 수양에 전념하면서 많은 제자를 길렀다.
선조에게 <무진육조소>를 올리고 <사잠>, <논어집주>, <주역> 등을 진강했으며 <성학십도>를 저술해 바쳤다. 이듬해 낙향했다가 병이 깊어져 70세의 나이로 죽었다.(daum백과)
다산정약용선생상
다산 정약용선생은 조선 후기 유형원과 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실학을 집대성한 실학자로 본관은 나주, 자는 미용, 송보, 호는 사암, 여유당이다.
그는 출중한 학식과 재능을 바탕으로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신유사옥 후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되었는데, 그는 이곳에서 독서와 저술에 힘을 기울여 그의 학문체계를 완성했다.
그는 피폐한 농촌사회의 모순에 관심을 갖고 정치개혁과 사회개혁에 대한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특히 <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를 통해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다산은 다양한 분야에서 천재에 가까운 인물로, 자연과학에도 관심을 기울여, 홍역과 천연두의 치료법에 대한 책을 내기도 했고, 도량형과 화폐의 통일을 제안했으며 건축기술인 거중기를 고안하기도 했다.(daum백과)
공예가 이순석선생이 작품활동했던 곳
이덕형선생집터
한음 이덕형(漢陰 李德馨, 1561~1613)선생은 조선시대 이조판서, 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조선 최고의 외교관이다.
‘오성과 한음’이라는 호로 조선시대 명콤비로 잘 알려진 이항복과 이덕형. 그들은 임진왜란이라는 국란을 맞아 함께 머리를 맞대고 나라를 구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인 재상들이다.
특히 이덕형은 일본과 명나라를 오가며 시의적절한 외교를 한 외교관이기도 하다.
이덕형의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명보(明甫), 호는 한음이다. 지중추부사 이민성(李民聖)과 유씨 부인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머리가 영민하고 학문에 통달해 주위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1580년(선조 13) 별시문과에 급제해 승문원의 관원이 되었고, 1583년(선조 16) 대제학 이이가 호당(湖堂)을 뽑을 때 이항복과 함께 뽑혀 사가독서를 했다.
그 뒤 부수찬, 정언, 부교리를 거쳐 이조 좌랑이 되었으며, 동부승지, 우부승지, 부제학, 대사간, 대사성 등을 역임했다. 대사헌 자리에 있을 때 임진왜란을 만나 왕을 호종하고, 명나라에 구원병을 청하는 등 전란을 극복하는 데 앞장섰다.
(daum백과)
서울역 3.1독립운동기념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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