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종로구 인왕산자락길 한국사회과학자료원-인왕산범바위-서대문역사거리까지 4.8km, 제3부 인왕공원전망대-서대문역까지 2.7km
2022. 01/22 토요일
오늘은 오후부터 날씨가 풀린다는 예보가 나와 있다. 오늘 필자가 걷고자 하는 길은 서울종로구에 있는 인왕산자락길로 한국사회과학자료원-인왕산범바위-서대문역까지 4.8km다.
인왕산정상까지 올라가지 않고 한국사회과학자료원정류장에서 시작해 인왕산범바위에서 일출을 감상하고, 인왕산자락길을 따라 무학재하늘다리와 서대문형무소를 거쳐 서대문역사거리까지다.
06:24-09:52(3:28분)
서울종로구 인왕산자락길 한국사회과학자료원-인왕산범바위-서대문역사거리까지 4.8km/2:24분
course
한국사회과학자료원정류장-사직근린공원-인왕산순환도로-범바위(1.3km)-(범바위일출)-해골바위-인왕공원팔각정전망대-무악재하늘다리-서대문형무소-서대문역사공원-독립문-영천시장-서대문역사거리(3.5km)
소요시간: 4.8km/2:24분, 평균속도(1.96km/시속), 일출(1:04분)
인왕공원전망대
무악재하늘다리
인왕산 인왕정(仁王亭)에서 안산(鞍山)방향으로 내려서면 무악재하늘다리에 도착하고, 무악재하늘다리는 서대문구와 종로구의 경계로 무악재하늘다리를 건너면 바로 서대문구 안산(鞍山)구간이다.
필자는 무악재하늘다리에서 안산으로 오로지 않고 왼쪽방향에 있는 서대문형무소로 향한다.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는 구)서울구치소의 일제강점기때 명칭으로 형조의 지휘를 받아 죄수를 관장하던 전옥서가 전신이다.
1908년(순종 2) 10월21일 일본인 건축가 시텐노 가즈마의 설계에 의해 한국 최초의 근대식 감옥인 경성감옥으로 건축되었다.
1923년 서대문형무소로 개칭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허위·유관순·강우규 등 수많은 애국지사가 수감되었던 민족수난의 현장이다.
해방 후에는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간첩·사상범, 많은 운동권 학생과 재야인사 등이 거쳐간 곳으로서 한국의 교도행정상 빼놓을 수 없는 기념지였다.
1987년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가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기존의 자리에는 서대문독립공원이 조성되었다.(daum백과)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는 문이 굳게 닫혀있어 관람은 못하고, 3.1운동기념탑-독립관-독립문을 거치고 영천시장을 지나 서대문역사거리에서 오늘의 트래킹을 마무리한다.
유관순열사동상
독립관
3.1독립선언기념탑
송재 서재필선생동상
독립문(獨立門)
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 서대문독립공원 독립문역사거리에 있는 독립문(獨立門)은 높이 14.28m, 너비 11.48m로 모화관정문인 영은문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세운 것이다.
1896년(건양 1) 독립협회 발의로 3,825원을 모금해 1896년 11월21일 정초식을 거행하고 이듬해 11월20일 완공했다.45×30㎝크기의 화강암 1,850개를 쌓아 만든 이 문은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있고 내부 왼쪽에 옥상으로 통하는 돌층계가 있으며, 꼭대기에는 난간을 둘렀다.
이맛돌 위에 앞뒤로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라 쓰고 그 좌우에 태극기를 조각한 현판석을 달아놓았다.독일공사관의 스위스인 기사가 설계했는데, 당시 서양건축의 조영경험이 있던 목수 심의석이 공사감독을 맡아 중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만들었다.(daum백과)
독립문영천시장
경기중군영터(京畿中軍營址)
서울시 서대문구 경기중군영터(京畿中軍營址)는 조선후기 경기도 순영(巡營)의 지휘관인 중군(中軍)이 있던 자리로 서대문구 천연동 동명여자중학교는 경기중군영이 있었던 곳이다.
서지변(西池邊)에 건립된 천연정(天然亭)을 사이에 두고 영조 때에 서쪽에 경기중군영이 건조되었다.
경기중군영을 일명 청수관(淸水館)이라고도 했다. 군영의 본명보다 청수관이라는 속명으로 세간에 알려지게 된 이유는 군영정문 앞에 다량의 청냉수(淸冷水)가 솟아 나오는 우물이 있어 부근 주민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말 우리정부는 일본의 강요에 의해 경기중군영을 초대 일본공사인 하나부사(花房義質)에게 공사관으로 제공하였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외국공사관을 설치한 최초의 일로서 이후 세계열강이 앞을 다투어 한성주재 공사관을 설치하는 구실이 되게 된다.
고종 19년(1882) 6월 일어난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일본공사관이 우리군인과 성난 시민들에게 포위되어 공격받게 되자 하나부사와 공사관 관원들은 관사에 불을 지르고 탈출하여 인천을 경유 일본으로 도망갔다.
이 때 청수관의 여러 건물들이 불에 탔다. 광무 6년(1902) 일제는 이 곳에 서울역을 세우려다 중론에 의해 중지되기도 했으며, 융희 2년(1908) 1월에는 기호지방 인사들의 모임인 기호학회(畿湖學會)가 이 곳에서 발기되기도 하였다.
청수관은 임오군란 때 대부분 소실되어 황폐된 채로 방치되었으나 한일합방 후에 향상회관(向上會館)을 건립하여 일제의 교화시설로 사용되기도 했다.
광복 후에는 학교재단인 동명(東明)에서 인수하여 동명여자중학교가 세워졌다.
출처: 바람돌이불로그
천연정터(天然亭址)
천연정(天然亭)은 조선 영조 때 도성 밖 서지(西池) 가에 세운 정자로 서지(西池)는 돈의문 서북쪽에 모화관을 세우면서 누(樓) 남쪽에 판 연못이다.
동대문 밖에는 동지(東池), 남대문 밖에는 남지(南池)가 있었고, 무악재를 오가는 관원들을 맞이하고 환송한 곳이 천연정이다. 천연정터는 서울 서대문구 서울금화초등학교 담 옆에 있다.
출처: 청심불로그
청수관터(淸水館址)
서울시 서대문구 청수관(淸水館)은 개항 후 일본에 제공되었던 최초의 외국공관 건물로 시원한 샘물이 솟아난 데서 명명된 청수관은 천연정이라는 정자를 중심으로 한 경기중영(京畿中營)이었는데 고종 17년(1880) 11월 하나부사(花房義質)가 공사로 부임하면서 공사관으로 쓰이게 되었고, 임오군란 때 하나부사가 도피하면서 불을 질러 소실되었다.
개항 후 서대문 밖 천연정(天然亭)을 중심으로한 경기중영(京畿中營)을 청수관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청수관이란 이름은 경기중영 정문 앞에 청냉(淸冷)한 샘물이 솟아나던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 설치된 일본공사관은 개항과 함께 우리나라에 초초로 설치된 외국공관이었다.
경기중영의 구내에는 서상헌(西爽軒).청원각(淸遠閣) 등의 여러 건물이 즐비하여 넓은 못 위의 연잎, 연꽃과 함께 승경(勝景)을 이루었으며 고종 초에도 많은 문인 묵객(墨客)이 천연정을 찾아와 연꽃구경을 하였다.
강화도조약 이후 일본의 외무대승(外務代僧) 미야모토(宮本小一)가 와서 이 곳에 머물렀고, 이듬해에는 대리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가 이 곳에 머물면서 원산.인천 개항 등에 관계되는 구체적인 사항을 협의 결정하였다.
고종 17년(1880) 11월에는 하나부사가 조선공사로 공식 부임하여 경기중영의 건물을 공사관으로 사용하게 된다.
고종 19년(1882) 일어난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격노한 구식군인들은 하도감(下都監)을 습격하여 일본인 훈련교관 호미모토(堀本禮造) 소위를 살해한 뒤 7월23일 저녁 청수관을 습격하기 위해 서대문 밖을 향하였다.
수만명의 군민들이 노도처럼 밀어 닥치자 하나부사는 공사관에 불을 지르고 20여명의 공사관원과 함께 인천으로 도주하였다.
출처: 바람돌이불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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