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서울종로구 원서동골목길여행 5.6km, 제1부 창덕궁돈화문-창덕궁3나길26-1번까지 2022. 08/10

산솔47 2022. 9. 9. 03:17

서울종로구 창덕궁돔담길 따라 걷는 원서동골목길여행 5.6km, 제1부 창덕궁돈화문-창덕궁3나길26-1번까지

2022. 08/10 수요일

 

 

어제까지 중부지방에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중부지방은 115년에 많은 비가 내렸단다. 이번 폭우로 인해 강남, 동작에는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오늘은 장마전선이 남부로 내려가고 중부지방은 햇볕이 쌈빡하게 내리쬔다.

그래서 오늘은 비가 그친 김에 서울종로구 창덕궁돔담길 따라 걷는 원서동골목길여행 5.6km를 걷고자 한다.

창덕궁 비원의 서쪽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원서동(院西洞)은 조선왕실을 돌보던 나인과 중인들이 모여 살던 동네다.

 

 

 

07:43-11:43

서울종로구 창덕궁돔담길 따라 걷는 원서동골목길여행 5.6km/4시간

course

창덕궁돈화문-우리소리박물관-현대사옥-관상감.관천대-현대원서공원-창덕궁금호문-북촌창우극장-이종훈집터-박인환집터-은덕문화원-창덕궁경추문-원서노인정-이보헌-송진우집터-고희동가옥.고희동미술관-백홍범가옥-한샘DBEW연구소-원서동빨래터-창덕궁외삼문-여운형집터-북촌문화센터-김성수선생옛집터-격외사-온유헌-가회동한씨가옥-휘겸재-계동교회-계동베렴가옥-북촌한옥역사관-은덕문화원-중앙고등학교-6.10만세운동기념비-3.1운동책원비-일민문화기념관-김형태가옥-가회민화박물관-북촌박물관-3.1독립운동기념터.손병희선생집터-가회동박인제가옥-역사가옥박물관-가회동주민센터-헌법재판소-현대사옥-현대원서공원

소요시간: 5.6km/4시간, 평균속도(1.4km/시속)

 

 

 

창덕궁(昌德宮) 정문인 돈화문

창덕궁(昌德宮)은 사적 제122호로 조선시대 5대 궁궐 가운데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1405(태종 5)에 지어져 광해군 때부터 정궁으로 사용되었다. 화재로 몇 차례 중건과정을 거쳤고 일제강점기에 변형을 거쳤다. 창경궁과 이어져 있고 뒤쪽에 후원이 조성되어 있다.

원래 정문인 돈화문이고 궁궐 내 금천 위에 금천교가 놓여 있다. 정전의 정문인 인정문은 양쪽의 월랑이 ''로 감싸고 있다. 마당 안에는 임금이 걷는 길이 있고, 북쪽 끝 중앙 월대 위에는 인정전이 자리한다.

인정전의 동북쪽에는 편전인 선정전이 위치해 있다. 창덕궁의 북쪽 터에는 금원이라 부르던 후원이 있다.

창덕궁에 있는 인정전·돈화문·인정문·선정전·희정당·대조전·선원전 등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daum백과)

 

 

 

 

 

비변사터(備邊司址)

비변사(備邊司)는 조선시대 외적의 빙어와 국가최고 정책을 논의하던 관청으로 중종 때 창설되어 흥선대원군에 의해 폐지되었다.

 

 

 

 

 

관상감터(觀象監址)

관상감(觀象監)은 조선시대 천문, 지리학, 역수(책력), 측후, 각루 등의 사무를 맡았던 관청으로 세종 7(1425) 서운관을 개칭하고, 관원 20명을 선발하여 천문을 교습시켰다.

연산군 때 사력서를 개칭하였다가 중종 때 다시 원명으로 환원하였다.

관원으로는 영사(1), (3), 부정(3), 첨정(4) , 판관(5), 주부(6), 천문학교수(6), 지리학교수(6), 직장(7), 봉사(8), 부봉사(9) 및 천문학, 지리학, 명과학의 훈도(9), 참봉(8) 등이 있었다.

직제와 인원에는 다소 변동이 있었으나 한말까지 이어지다가 고종 31(1894)에 폐지하고 관상소로 고쳤다.

유적인 일영대가 서울종로구 계동에 보존되어 있다.[출처]개미실사랑방

 

 

 

 

 

관상감 관천대(觀象監 觀天臺)

관상감 관천대(觀象監 觀天臺)는 조선 초기에 세운 관천대의 하나로 사적 제296호로 등록되어 있고, 서울시 종로구 원서동 현대건설주식회사 사옥(옛 휘문고등학교 자리)에 있다.

조선 초기에 내관상감은 경복궁 안에 있었고 이곳에는 외관상감이 있었다.

이 관천대는 15세기경 이곳에 관상감이 세워진 직후 세워졌다고 생각되지만 그 정확한 연대를 밝힐 수 있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휘문고등학교 교정에 옮겨 놓았다가 1984년 원래의 자리에 복원했는데 휘문고등학교 시절의 측량에 의하면 꼭대기에 있는 관측용 대석의 십자선은 남북 방향에서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는 자북과 거의 같은 방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관천대 그 자체의 방위는 진북 방향에서 동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위치는 동경 126°572, 북위 37°350이다.(daum백과)

 

 

 

 

 

사도시터(司導寺址)

사도시(司導寺)는 조선시대 궁중의 미곡과 장 등의 물건을 맡았던 관청으로 1392(태조1) 고려의 제도를 따라 요물고를 설치하였다.

이후 공정고, 도관서로 바뀌었다가 사선서에 흡수되어 사보시(司導寺)라 개칭하였다. 1882(고종19)에 폐지되었다.

 

 

 

 

 

현대원서공원

현대원서공원은 원래 휘문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던 곳인데, 휘문고등학교가 대치동으로 옮겨 간 후 주민들의 뜻에 따라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송학선의사의거터(宋學先義士義擧址)

송학선의사의거터는 1926428일 순종의 승하에 울분한 송학선의사가 금호문 앞에서 조선총독을 살해하려던 자리다.

 

 

 

 

 

고희동가옥

고희동 가옥은 고희동 화백이 1918년 일본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직접 설계한 한옥으로 고화백이 41년간 살았던 고택이다.

이 가옥은 우리나라의 전통과 일본식 가옥형태를 절충해서 지었으며, 2004년 제84호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원서동 빨래터

원서동 빨래터는 창덕궁 신선원전의 외삼문 우측 궁장(宮墻) 아래로 흐르는 소하천에 마련된 빨래터로 궁내의 물이 궁궐 담장을 통해 바깥으로 흐르는 곳에 평교(平橋) 형식의 2칸 다리二間石橋 : 길이, 너비 약 1.5m 규모를 설치하고, 그 위에 궁장을 연결하였다.

원서동 빨래터로 통하는 물은 궁내의 풍부한 수원으로 인하여 사시사철 마르지 않을 정도로 많이 흐르고, 또한 위치가 궁궐과의 경계인 담장 아래여서 궁궐의 궁인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다함께 이용할 수 있었던 곳이다.

조선시대 도성 내에는 이름난 빨래터가 여러 곳에 있었는데, 이곳은 청계천과 함께 오래된 전통의 빨래터로 널리 알려진 곳의 하나이다.

 

 

 

 

 

백홍범 가옥

백홍범 가옥은 1910년경 완성된 집으로 상궁이 살았다고 한다. 전형적인 한옥과 1930년대 이후 근대적인 건축 재료를 활용한 과도기적 형태의 집이다.

 

 

 

 

 

 

 

서울종로구 창덕궁돔담길 따라 걷는 원서동골목길여행 5.6km, 제2부 창덕궁3나길26-1번-김성수선생옛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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