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김포 덕포진둘레길 6.5km, 제2부 덕포진-덕포진가포대까지 1.3km 2022. 12/02

산솔47 2023. 1. 28. 13:19

김포 덕포진둘레길 대명항-덕포진-대명항까지 6.5km, 제2부 덕포진-손돌묘-덕포진가포대까지 1.3km

2022. 12/02 금요일

 

 

덕포진둘레길은 대명항에서 출발해 김포함상공원, 덕포진, 덕포마을 등을 거쳐 대명항으로 되돌아오는 순환코스로 6.5㎞다.

필자는 2018. 10/13일 덕포진둘레길 대명항-덕포진-대명항까지 필자가 걸은 코스를 기준으로 8.6km를 걸은바 있다.

덕포진둘레길의 시작은 평화누리길1코스 대명항-문수산성까지 13.5km의 시점과 같은 대명항 김포함상공원이 있는 곳이다. 김포와 강화사이에 흐르는 염화강변을 따라 철책선과 숲길을 걷다보면 덕포진을 만난다.

손돌 묘가 있는 덕포진은 사적 제292호로 강화만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인 손돌목에 설치된 조선시대 군영으로 신미양요와 병인양요 때 치열했던 전쟁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09:11-12:16

김포 덕포진둘레길 대명항-덕포진-대명항까지 6.5km/3:05

course

대명항버스종점-대명포구횟타운-대명항-김포함상공원-평화누리길시점-덕포진-파수청터-손돌묘-손돌목.덕포진돈대터(2.9km)-파수청터-덕포진-덕포진사적지.덕포진전시관-덕포진교육박물관-외할머니의부엌-평화누리길시점-대명항수산시장-대명포구횟타운-대명항버스종점(3.6km)

소요시간: 6.5km/3:05, 평균속도(2.12km/시속)

 

 

덕포진(德浦鎭)

덕포진은 서해로부터 강화만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인 손돌항에 천혜의 지형을 이용한 군사의 요충지로, 창설 시기는 임진왜란의 쓰라린 체험을 겪은 조선 왕조의 선조조로 추정된다.

그 후 영조36(1760)에는 덕포진에 종3품의 수군첨사가 수군316명을 지휘하였으며, 부에서 전속방어 거리는 남쪽으로 15리에 이른다.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의 두 양요의 격전을 치루었던 곳으로 1980년에 발견되어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다.

 

 

덕포진파수청터

발굴당시 탄약고 및 포대에 불씨를 공급하기 위한 불씨보관 장소 파수청지가 발견되었고 소포, 중포, 포탄 및 상평통보가 출토되었다. 당시 발굴된 6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5, 덕포진전시관에 1문이 보관중이다.

 

 

 

손돌(孫石,孫乭)묘

손돌은 고려 때 뱃사공으로 왕이 강화도로 피난을 가던 때에 왕의 뱃길을 안내하게 되었는데, 바닷길과 바람에 밝았던 손돌은 안전한 초지와 여울로 배를 몰았지만 풍랑은 더욱 거세질 뿐이었고, 왕은 손돌이 일부러 잘못된 길로 가는 줄 의심하고 손돌을 처형하게 했다.

아무런 항변도 못한 채 죽음을 선고받은 손돌은 죽기 직전에 내가 죽으면 박을 물에 띄워 따라가면 적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뒤 처형되었다.손돌의 말대로 박을 띄워 그대로 따라가니 왕은 무사히 강화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왕은 손돌의 충성심에 감복하고 자신의 경솔함에 후회하면서 지금의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덕포진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그의 무덤을 만들고 후하게 장사지내어 손돌의 영혼을 위로하였다.

그 후 해마다 손돌이 죽은 날인 음력 1020일경이 되면 원혼에 의해 매서운 강풍이 불기 시작하니 이 바람을 '손돌바람'이라 불렀다. 손돌이 죽은 곳은 이후 '손돌목'이라 불렀다.

 

 

 

덕포진돈대터

 

 

 

 

김포 덕포진둘레길 대명항-덕포진-대명항까지 6.5km, 제3부 덕포진가포대-덕포진전시관-대명항정류장까지 2.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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