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강둘레길 7.8km, 제2부 절두산성지-합정역까지 3.4km 2022. 07/25
서울 한강둘레길 마포역-합정역까지 7.8km, 제2부 절두산성지-합정역까지 3.4km
2022. 07/25 월요일
오늘은 한강변산책로를 따라 걷는 한강둘레길 마포역-합정역까지 7.8km를 걷고자 한다. 이 코스는 2020년 09/08일 걸은 바 있는 한강역사탐방길8코스 양화나루길 합정역-마포역까지 9.3km와 같은 길이다.
오늘 걷는 코스는 지난번과 반대방향으로 걸으며,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은 제외하고 한강변산책로만 따라 걷기 때문에 전에 걷던 거리와는 차이가 있다.
07:32-10:36
서울한강둘레길 마포역-합정역까지 7,8km/3:04분
course
마포역-BBS불교방송-마포대교북단-마포나루터-양화진나루터.서깅대교북단(2.6km)-양화진역사공원-절두산순교성지-2호선철교북단-잠두봉선착장-양화대교북단(3.0km)-망원한강공원-망원초록길-망원정-포은정몽주선생동상-합정역(2.2km)
소요시간: 7.8km/3:04분, 평균속도(2.54km/시속)
절두산순교성지
절두산은 원래 머리를 높이 든 형상이라 하여 가을두, 누에의 머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잠두봉이라 부르던 곳이다. 바로 아래 양화진나루터에는 한강을 통해서 각 지방에서 조세곡 수송선과 어물, 채소 등을 실은 배가 드나들었다.
양화진주변은 잠두봉과 어울려 이름난 명승으로 많은 풍류객과 문인들이 뱃놀이를 즐기면서 시를 지었던 곳이기도 하다. 1866년 2월 프랑스군함이 천주교탄압을 문제삼아 한강을 거슬러 양화진과 서강까지 진입하였다.
이에 격분한 대원군은 수많은 천주교인들을 잠두봉에서 목을 베어 참수케 한다. 그 뒤로 머리를 잘랐다하여 절두산(切頭山)이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고,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병인(1866년) 순교100주년을 기념하여 1967년 10월 순교 기념관을 개관하였다.
현재 절두산성지 내에는 한국 천주교회 관련 사료와 유물.유품전시관, 28위의 성인유해를 모신 유해실, 순례성당, 순교자 교육관을 비롯하여, 야외 전시관이 있다. 절두산순교성지는 생명을 바쳐 믿음을 증거한 한국 천주교회 신앙 선조들의 순교정신이 살아 쉼쉬는 뜻깊은 성지이다.[Daum백과]
절두산순교성지: www.jeoldusan.or.kr/
망원정(望遠町)
망원정(望遠亭)은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로 1990년 6월18일 서울시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었다.
1936년 4월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에 의해 경성부 행정구역이 확장될 때 경성부 망원정(望遠亭)이 되었다. 1943년 6월10일 조선총독부령 제 163호에 의해 區制度가 실시됨에 따라 서대문구 망원정(望遠亭)이 되었다가, 1944년 10월23일 조선총독부령 제350호에 의해 마포구가 신설되어 마포구 망원정(望遠亭)이 된 것이다.[Daum백과]
포은 정몽주(鄭夢周)선생동상
포은 정몽주(鄭夢周)는 고려국 경상도 영천출생으로 1392년 4월26일 고려국 개경 선죽교에서 암살당한 고려국 판도판서 등을 거쳐 고려국 수문하시중 직책을 지낸 고려의 충신(忠臣)으로 문신·외교관이자, 정치가·교육자·유학자다.
그의 본관은 연일(迎日)이고, 초명은 몽란(夢蘭)·몽룡(夢龍),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고려삼은의 한 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려 경상도 우항리와 영천현을 거쳐 개경에 거주하였던 그는 1360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로 출사하여 여러벼슬을 지내고 성균관대사성, 예의판서, 예문관제학, 수원군 등을 지내며 친명파 신진사대부로 활동하였다.
역성혁명과 고려개혁을 놓고 갈등이 벌어졌을 때 온건개혁을 선택하였으며, 명나라에 외교관으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관직은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과 익양군충의백에 이르고, 역성혁명파의 조선건국에 반대하다가 1392년(공양왕 4년) 4월 이성계의 문병차 돌아가던 길에 개경 선죽교에서 이방원 일파에 의해 암살되었다.[Daum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