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부여 궁남지와 연꽃축제를 둘러보고 2006-07-31

산솔47 2011. 4. 1. 21:00

부여 궁남지와 연꽃|43열린산악회

 

 

축제장소 : 부여 궁남지와 연꽃
축제관람 : 2006. 07/31(월)

  • 부여 궁남지
    백제의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부여에서 빼놓지 말고 보아야 할 곳이 궁남지다.백제의 뛰어난 미적 감각과 수준 높았던 생활문화를 보여 줄 뿐 아니라 일본의 아스카 문화를 열었던 백제인들의 숨결을 가장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궁남지이기 때문이다.

    군청방향으로 길을 잡고 군청앞 삼거리에서 직전해 군청을 지나 조금만 가면 넓은 들 중간에 연 못이 있고 연못안에 포룡정이라 씌어진 정자가 떠있고 주위로는 버드나무가 보기좋게 자라있는 그림 같은 장면을 볼 수 있다. 이곳이 궁남지다.

    궁남지는 신라 선화공주와 결혼한 무왕의 서동요 설화가 깃든 곳으로도 유명한데, 삼국사기에 보면「백제 무왕 35년(643) 궁의 남쪽에 못을 파 20여리 밖에서 물을 끌어다가 채우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못 가운데는 섬을 만들었는데 이는 방장선산을 상징한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연못의 동쪽 언덕에서 백제 때의 기단석과 촛거, 기와조각, 그릇조각 등이 출토되어 근처에 이궁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현재는 세 개였던 섬이 한 개만 남아 있고, 그 섬에는 연꽃을 닮은 정자를 세우고, 다리를 만들어 드나들 수 있게 해 놓았다.


    궁남지는 현존하는 우리 나라 연못 가운데 최초의 인공 조원(造苑)이다. 경주의 안압지보다 40년 앞서 만들어져서 안압지의 모형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 '서동요'의 전설 '궁남지'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궁남지는 백제시대 별궁(別宮)에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연못이다. 무왕 이 궁성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리나 되는 곳에서 물을 끌어 들여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고 못 한가운데에는 중국 전설속 방장선산을 모방한 섬을 만들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궁남지는 백제시대 별궁(別宮)에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연못이다.

    무왕 35년(634)에 궁성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리나 되는 곳에서 물을 끌어 들여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고 못 한가운데에는 중국 전설속 방장선산을 모방한 섬을 만들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궁남지에선 무왕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를 빼면 여늬 연꽃 관광지와 차이가 없다. 어릴적 이름이 서동으로 불렸던 무왕은 신라의 국정을 탐지하라는 밀명을 받고 마를 파는 상인으로 위장해 서라벌로 잠입한다. 어느날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됐다. 일개 상인의 신분으로 일국의 공주를 꼬드긴 것에서 알 수 있듯 서동은 오늘날로 치면 뛰어난 '작업맨' 이었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시집가서 서동 도련님을 밤마다 몰래 안고 간다'는 내용의 서동요를 직접 지어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아이들의 입은 지금의 인터넷 기능을 충실히 해냈다. 심지어 '아이까지 낳았다'는 등 '댓글' 형식의 다양한 해석까지 달려 일파만파로 번지자 왕은 결국 선화공주를 내쫓았고, 무왕은 기다렸다는 듯 백제로 데려갔다. 두사람이 신접 살림을 차린 곳이 바로 궁남지터다.

    또한 이곳은 무왕의 어머니가 연못의 용과 정을 통해 무왕을 낳았다는 탄생설화까지 얽혀있어 더욱 의미있다. 무왕이 궁남지를 만든 이유에는 외침을 막기위해 물을 담아두는 국방상 목적도 있다. 그러나 궁남지의 빼어난 조경미로 인해 선화공주의 향수를 달래주기위한 '사랑의 연못'으로 더 알려져 있다.

    1400여년이 지난 지금 서동요의 주인공들은 떠났지만, 후손들이 연꽃을 심어 그들의 사랑을 되새기고 있다. '순결' 또는 '청순한 마음'이라는 꽃말을 가진 연꽃, 궁남지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까지 깃들여 있어 연인들에겐 더없이 좋은 데이트 코스다. 궁남지의 모습이 연못에 생생히 투영되는 아침이나 해질녘, 궁남지에 들어서면 포룡정 다리를 다정하게 걸어가는 무왕과 선화공주를 만날 것만 같다.


    [삼국사기]
    무왕 35년(634)에 '3월에 궁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리나 먼 곳에서 물을 끌여들이고 못 언덕에는 수양버들을 심고 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었는데 방장선산(方杖仙山-도교에서 신선이 노는산을 방장선산이라 한다.)을 모방하였다.'는 말은 바로 이 궁남지를 두고 한 말이다.

    연못 동쪽에서 주춧돌이 발견되고 기와 조각이 흩어져 나와 이 궁남지가 궁성의 이궁(본궁에서 조금 벗어나 위락을 겸할 수 있는 별장과 비슷한 곳)에 따르는 원지(苑池)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근처에는 3단으로 짜 올린 팔각정 우물도 있다. [삼국사기]에는 또 무왕 39년(638)에 '3월에 왕은 비빈과 더불어 큰 연못에 배를 띄우고 놀았다.'고 하였으니 바로 이 궁남지에서 뱃놀이도 즐겼던 듯하다. 물은 능산리 동쪽의 계곡으로부터 끌어온다.

    궁남지 바로 동쪽에 있는 화지산의 망해정이 푸른 연못에 그림자를 드리워 신선경을 방불케 했다는 기록도 [삼국사기]에 전한다. 둥근 연못 주위의 면적은 1만 3,772평에 이른다. 1965년에 정비작업을 했고 다리와 누각은 1971년에 세운 것이다. 사적 제 135호이다.


  • 궁남지와 연꽃지를 다녀와서
    연꽃축제는 이미 다 끝나 갖가지 조형물들은 다 철거한 상태고, 연꽃은 다 졌는지...? 아직 피지 않은 것인지...? 꽃은 별로 없다. 궁남지 연못 주변으로 삥~ 둘러 1만여평에 이르는 넓은 들판이 온통 연으로 꽉~ 들어차 있다.

    축제가 끝나서인지 사람도.. 먹거리 장사도.. 별로 없어 한산하기만 하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전설이 서려있는 궁남지 연못은 보면 볼 수록 아름답다. 궁남지는 백제의 서동왕자가 신라의 선화공주를 위해 만들었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연못이란다. 궁남지 한 가운데 포룡정이라는 정자에 앉으면 신선이 따로 없을 듯 하다.

    궁남지를 한바퀴 돌고, 끝이 보이지 않는 연 단지를 돌아오면 두시간은 족히 걸릴것 같다. 햇볓이 너무 따가워 빠른 걸음으로 지름길을 걸어 연꽃단지를 삐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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