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민둥산 억새꽃산행기 2001-10-28

산솔47 2011. 3. 31. 16:14

01-10-28  증산 '민둥산 억새풀' 등산을 마치고..
 일요일 아침
아무일 없듯 살아내고 있지만 절망과 희망속에서 아픔의 상흔들을 손으로 집어낼 많큼
털어내지 못하는 일상이 꽁무니에 달려 귀찮게 했다.
따라 붙지 못할 곳으로 가 벼랑 끝으로 밀어 버려야지...
명약은 몸을 다스리고 영약은 마음을 다스린다고 했던가?
보여지는 것 느껴지는 것들로 하여금 영약이 되어 내 마음속의 여백이 깨끗함으로 남겨지길 
소망하며 가슴 깊이 타들어가는 설레임을 안고 억새를 만나러 간다.
청량리역 기차 플렛폼에 첫발이 닳는 
순간의 그 짜릿함과 긴 통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숫자를 읽어가며 좌석을 확인한다.
새마을호... 오늘의 좌석 번호 까지도 난 잊지 못할 것이다.
묶여 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이 기쁨의 동질을 느낄수 있을까?
이런 여행을 계획하는데 소모된 카로리가 얼마인데... 
처음 타보는 태백선(청량리~영주)이란 점도 기억할만하다.
눈에 익던 풍경이 바뀔 때 즈음 고개들어 일어나는 깨달음이 있었다.
지나고 나면 어느샌가 내가 심었던 생각의 씨앗들이 열매가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여행을 늘 마음속에 작은 소망으로 간직해 오던 일이었던 일이고 보면 
지금 이순간의 열매를 보면서 감사함을 느끼며 내마음의 좋은 생각들이 열매 맺기 까지의 
믿음을 가지고 나의 저편 한쪽의 이야기들을 꺼집어 내어 순서를 정하고 틈틈히 
사랑을 확인하고 나누다 보니 오늘의 목적지인 증산역 도착 안내가 정신을 들게 한다.
아라리의 관문이라는 환영 팻말이 반갑다.
한적한 역광장에 어김없이 버티고 있는 안내 표지판 앞에서 지금부터 움직여야할 
행동 반경을 정해야 했다.
증산초교→발구덕→민둥산(4Km ,1시간 30분 소요) 제2 등산 코스를 선택하고 동남천변을
따라 약1.5km를 걸으면 등산로 입구라는 안내 표지판을 그자리에 그대로 있으라 하고 
가볍게 걷기 시작한다.
너무 짧아서 싱거울 것은 착각을 하면서 말이다. 이름이 가져다 주는 느낌부터가 그랬다.
약수터가 있는 뒷산 쯤으로 산의 정기 같은 것은 있지도 않고 기암괴석이나 절벽도 물론
 없을테고,높고 찌름도 전혀 없을 누렁소 엉덩이처럼 펑퍼짐하게만 생각되어지는 
산이라 미루어 짐작이 간다. 그래도 난 마냥 좋기만하다. 
산의 모양새가 어찌하던 상관하지 않으리라 하고 즐겁게 산보하듯 민둥산을 향해 걷는다.
시장기를 매우고자 입구에 자리한 '민둥산가든'이란 음식점으로 남의 이목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쑥들어가 육개장으로 든든히 배를 채운다.  좁쌀 동동주도 한잔 곁들인다.
삼악산이 생각났다. 그때도 동동주 한잔을 마시고 선녀탕에 오르지 않았던가?
천불사를끼고 등산로가 시작되며 해발 650M라는 표지판을 확인 하고 오른다.
위험하고 거친곳은 없으나 시작부터 가파른 경사로 주변을 돌아보거나 하늘 감상은 
할수도 없는 예사롭지 않은 산행임을 예고한다.
잔솔이 낙엽되어 소리도 곱게 떨어지는 오솔한 길을 천천히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 마다 
박자 맞춰 배낭에 매달린 종이 풍경소리처럼 챙그랑 챙그랑거리며 따라 붙는다. 듣기에도 좋다.
많은 사람이 내 앞을 질러간다. 턱밑에 땀방울이 매달려 송글송글 사랑을 느끼게 한다. 
오르는 사람은 "올라가도 경사뿐"이라고 하고 내려가는 사람은 "내려가도 끝도 없다"하고 
힘들고 지루함을 나타낸다. 그렇게 얼마를 오르니 "해발 870M 발구덕"이란곳에 이른다.
사실 이곳까지 차가 올라올수 있으므로 발구덕부터 시작한다면 그다지 전문 등산차림이 
아니어도 될 듯 싶다.
이미 그렇게 알고 온사람들은 복장도 참 자유롭다. 여유있게 차 한잔 막걸리 한잔들을 하고 있다.
난 돌아갈 열차 시각에 마음이 약간은 조급함을 가지고 있어서 쉬는것도 잠시 쉬었다.
아니 그보다 정상에서의 시간을 더 갖고 싶어서 쉬는 시간을 아끼고 싶었함이 더 정확하리라.
억새밭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 환상을 깼다. 은비색 새털 같은 억새는 없다.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 누런 동산으로 마른잎 부대끼는 소리만 사그락 사그락 거리고 있다.
한주 전쯤 왔어야 했다. 10월 중순이 절정이었을것 같다.
때늦은 억새라도 좋아라 하고 정상에는 울긋불긋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로 봉우리를 이룬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들을 오래도록 남기고자 사진속에 가둔다. 2시 30분 정상에 서 본다.
1,118M ...온통 억새밭으로 밋밋한게 정말 강원도 산이란 말인가 하고 의심이 갈정도로 
나무 한그루 없다. 거 참! 풀일뿐인데 사람의 마음을 압도 하기도 한다.
아마 저 능선부터 이 정상까지 억새들은 바람이 하고자 하는대로 서로를 부벼대며 돌림 
노래 부르듯 넘실넘실 거리다 조금더 오르는 지억산 너머로 석양이 내려 앉을때면 희디힌 
속살까지 노을에 젖어 붉게 물들이며 흰 달빛에 고개 떨구며 잠들겠구나.  
눈을 감고 귀를 세워 억새의 노래를 들어본다.
이곳 저곳 길이 나있는 키를 넘는 억새 숲으로 난 이끌려 들어간다.
사진을 찍기 위한 사람의 흔적들이 역력했고 연인들 남기고 간 사랑의 흔적이 억새들이 누인채 
새 둥지마냥 틀고 있다.
억새를 만나러 왔으니 억새와 포옹이라도 한번해야 했다.
억새 한 잎 목을 비틀어 잡아당겨 얼굴 마주해보니 어느 한구석 예쁨도 향기로움도없는 까실까실 
털 복숭이 일뿐이다.
군락을 이루지 못하면 눈길 한번 받을 수 없음을 알고 해마다 자신을 땅에 떨구었을것이기에 
자연의 본능적인 종족 번식은 생명의 신비로 여김을 받는가보다.
내년에 꼭 다시 오겠노라는 약속을 억새 숲에 묻어두고 아쉬운 발걸음을 재촉한다.
증산역... 오후 6시20분 새마을호의 자유석을 예매한후 대합실에서 기다리기가 너무 아까워서 
주변을 돌아보기로 하고 동남천으로 내려간다.
석회암지역이 많아서이기도 하고 폐광된 사북이 가까워서인지 동남천의 물은 물이라고 할수
없이 탁하고 레미콘을 세차라도 한것처럼 구정한다.
'네가 맑은날 손이라도 한번 씻어주고가마' 하고 돌아나와 야간 열차의 단잠을 꿈꾸니 10분 
연착이라는 안내말도 지루하지 않다.
처음으로 기차의 식당칸을 들어가본다. 도시락으로 식사를 하는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여행이  행복한 나의 하루 여행이 된다. 
그리고 다시 시작할수 있을거라는 기대도 함께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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