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인왕산(仁王山) 서울성곽길답사기 2010-01-03

산솔47 2011. 4. 9. 14:19

인왕산(仁王山) 서울성곽길|산솔산방
인왕산은 산 전체가 화강암인 바위산으로 암반이 노출된 것이 특징이다.
산능선을 따라 서울의 성곽이 지나고 있으며 동쪽 산허리에는 북악산길과 연결되는 인왕산길이 나 있다.
인왕산은 조선시대 명산으로 숭앙되어 북악을 주산으로, 남산은 안산(案山), 낙산(駱山)과 인왕산을 좌우용호(左右龍虎)로 삼아 궁궐을 축조하였다.


▣ 산 행 지 : 서울 인왕산(仁王山/338.2m) 서울성곽길
▣ 산행일자 : 2010. 01/03(일)
▣ 산행구간 :
    경복궁역-사직공원-단군신전-인왕산 서울성곽입구-(성곽공사중으로 출입통제)-서울성곽 따라
    산행-인왕산 올라갈 수 있는곳까지 등산-인왕산 서울성곽입구 원점회귀-서울성곽따라 남삼방향으로-
    서울시교육청-서대문터.강북삼성병원-정동극장-중명전-덕수궁돌담길-덕수궁정문-피맛골-(점심
    식사)-청계천입구-동대문역
▣ 소요시간 : 4시간35분(식사시간 1시간40분 포함)
▣ 교 통 편 : 09:30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출구



경인년 인왕산(仁王山) 호랑이가 부활한다.
서울 종로구는 2010년 경인년 호랑이띠 해를 맞아 인왕산에 호랑이 조형물을 오는 2010년 2월께 설치한다고 12월23일 밝혔다.
서울의 우백호격인 인왕산에는 예로부터 호랑이 출몰이 잦아 조선시대에 군대를 출동시켜 호랑이 잡이에 나서는 등 인왕산 호랑이는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았다.

종로구는 이러한 인왕산 호랑이의 명성을 되살려 관광명소화하기 위해 인왕산에 호랑이 조형물을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설치 장소는 인왕산 정상, 청운공원 윤동주 시비 옆, 사직동 인왕산 초소 삼거리 등 세 곳이다.


종로의 맛집_ 피맛골
피맛골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종로 일대에서 서민들이 말 탄 관리들을 피해 다니는 것을 뜻하는 '피마(避馬)'에서 유래됐다.
해방 전후에 좁은 골목길 곳곳에 서민들을 위한 선술집이며 국밥집 등이 빼곡하게 들어서기 시작해 소박한 서민적 정취가 듬뿍 배어 있는 맛집 골목으로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현대화와 재개발의 대세에 밀려 자리를 내주게 돼 지난해부터 가게들이 하나둘씩 옮겨가고 있다.

열차집
대표적인 피맛골 터줏대감 격인 막걸리집.
황학천이 복개되기 전인 59년 천변에 나무 의자를 늘어놓고 시작했다.
69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고, 우제은(68)씨가 77년부터 32년째 뒤를 잇고 있다.
메뉴는 한결같이 빈대떡에 막걸리다.
간을 하지 않은 빈대떡에 굴젓을 곁들여 먹는 맛이 일품이다.
빈대떡(9000원) 등 메뉴는 10년째 같은 가격이다.
02-734-2849.

대림식당
삼치·굴비·꽁치 등을 구워 파는 생선구이 전문 식당.
30년째 쉬는 날이 없다.
가격도 모든 메뉴가 6000원, 10년 전 그대로다.
아직 이전 계획이 없다.
02-739-0829.

인사동 맛집_ 부산식당
생태탕의 제철이다 오랫만에 생태가 생각나 인사동으로 발길을 옮겼댜.
1976년 개업한 부산식당.
지금은 2대째 인상좋은 아들이 꾸려나가고 있다.
간판도 조그맣고 내부는 허름하기 그지없는데 사람들이 꽉 찾다.
제철은 물론 한겨울.
엄동설한의 추위속에서 맛보는 뜨끈한 생태탕의 시원한 국물맛은 오르가즘을 느끼게 한다,
싱싱한 생태에 무와 두부를 큼직큼직하게 썰어넣고 팽이버섯, 미나리고 고명을 얹고 꼭대기는 곤이와 내장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마 늘, 고춧가루로 양념해 맑은 국물에 바글바글 끓여놓은 생태찌개는 시원하고 담백하다.
까칠한 입맛을 되살리는데는 이만한 게 없다.
생태탕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말할여지도 없이 신선한 생태를 사용하는 것이다.
한물간 생태에 아무리 양념을 잘한다 하더라도 신선한 생태의 엑기스에 견줄수 없다.
그리고 이집의 특징중 하나인 쌀밥이 예술이다.
윤기가 흐르고 씹는 구감도 좋다.
마지막 보너스 간장게장을 한쪽씩 주는데 그 간장으로 밥을 비벼먹는 맛도 색다르다.
인사동에서 청석골길로 가다보면 목인박물관 못가 오른쪽에 있다.
주소 : 종로구 관훈동 180
전화 : 02-733-5761
영업시간 : 11:30-22:00
쉬는날 : 일요일


인왕산 서울성곽길답사기
□. 사직공원
조선 태조가 한양에 수도를 정하고 궁궐과 종묘를 지을때 함께 지은 사직단은 1921년 사직단 주변이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사직단은 태조3년(1394년)에 고려의 예를 따라 토신을 제사하는 국사단을 동쪽에, 곡신을 제사하는 국직단은 서쪽에 배치하고 신좌를 북쪽에 모셔 1년에 3번 제사를 지냈다.

현재 공원내에는 사직단과 황학정, 단군성전 등이 있으며 이이, 신사임당의 동상 등이 있다.
인왕산길의 진입로가 가까이 있고 도심지에 위치한 아담항 휴식처로 산책객들이 많이 찮는 곳이다.


□. 단군성전(檀君聖殿)
서울 사직동 사직공원의 단군성전은 1968년 이숙봉 여사를 비롯한 세 자매의 희사로 건립되었다.
단군성전으로서는 대한민국 최초의 공공건물로서 현정회에 이관되었고, 1973년 서울특별시 보호문화재로 인정받았다.


□. 인왕산
인왕산 등산로는 초입부터 서울성곽을 따라 계단으로 잘 만들어져 있다. 서울성곽은 조선시대에 수도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內四山(동쪽의 낙산, 서쪽의 인왕산, 남쪽의 남산, 북쪽의 북악산)을 연결하여 쌓아놓은 산성이다.

사직공원에서 올라가는 인왕산 등산로 시점부터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성곽은 자하문을 거쳐 북악산 능선을 따라 혜화동 성균관대학교 뒤를 돌아 동소문인 혜화문에 이르고 길 건너 카톨릭대학교 뒷 담을 이루면서 낙산으로 올라가서 이대동대문병원 옆까지 이른다.

그러나 이번 산행은 인왕산 정상에서 자하문쪽으로 하산하는게 아니라 탕춘대성곽을 따라 홍지문쪽으로 하산하여 세검정을 답사하고 시매버스를 타고 창의문(자하문)으로 가고자 한다.

탕춘대성곽은 인왕산에서 창의문(자하문)쪽으로 뻗은 서울성곽에서 중간에 좌로 뻗어나와 북한산 향로봉을 잇는 성곽을 말한다. 탕춘대성곽을 따라 하산하는 구간은 홍지문을 얼마 앞에 두고 급경사를 이룬다. 이는 인왕산과 북한산의 경계에 홍제천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 서울성곽
사적 제10호인 서울성곽은 서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의 석축도성이다.
둘레 약 17㎞.
현재 숭례문·흥인지문 등의 성문과 암문(暗門)·수문(水門)·여장(女墻)·옹성 등의 방어시설을 갖추고 있다.

조선 초 태조는 한양천도를 위하여 일차적으로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다음 1395년(태조 4) 9월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고 정도전(鄭道傳)에게 명하여 성터를 측정, 조사하게 하였다.
이에 정도전은 5만 9500자의 성터를 결정, 1396년부터 성을 축조하기 시작하였다.

높고 험한 산에는 돌로 쌓고, 평지는 흙으로 쌓았으며, 청계천에 있는 수구(水口)에는 홍예를 쌓고 좌우에는 석성을 축조하였다.
같은 해 가을 8만 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토축부분을 석축으로 고치고 4대문과 4소문을 완성하였다.

1422년(세종 4) 이 성을 대대적으로 개축하여 도성은 둘레 8만 9610자, 높이 40자 2치, 여장 4664첩(堞), 치성(雉城) 6군데로 되었고, 그 뒤 1704년(숙종 30) 3월부터 약 5년에 걸쳐 5군영에 분담하여 둘레 9975보, 성첩(城堞) 7081개를 고쳐 쌓았다.

1915년 일제는 근대도시로의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경성시구역개수계획을 만들어 성문과 성벽을 무너뜨렸으며, 그 결과 현재 성문과 성벽의 일부만 남아 있다.


□. 서대문(돈의문 敦義門)터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 2가에 있던 조선시대 성문.
일명 서대문(西大門)이라 하며 1915년 철거되었고, 그 자리는 경희궁터에서 독립문 쪽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쯤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1890년대 말쯤에 찍은 사진으로 보아 견고한 돌축대 중앙 위쪽에 홍예문을 내어 도성의 출입을 가능하게 했고, 축대 위에는 단층 우진각지붕의 초루를 세우고 둘레에 낮은 담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처음 세워진 것은 1396년(태조 5)이나 1413년에 폐쇄되었다가 태종 때 서전문(西箭門)을 새로 지어 도성 출입문으로 사용했는데, 세종 때 서전문은 헐고 돈의문을 세웠다.
이 문은 숙종 때 개건되어 조선시대 내내 서울 북서쪽의 관문으로 쓰였다.


□. 정동극장(貞洞劇場)
정동극장(Chongdong Theater)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정동에 위치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복합 공연장이다.
국내 최초의 근대식 극장인 원각사의 복원을 이념으로 1995년 국립중앙극장 분관으로 설립되었으며, 이후 재단법인으로 독립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 중명전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貞洞)에 있는 조선 말기의 2층 건물.
1900년(고종 36)에 지어진 한국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서, 경운궁(慶運宮;德壽宮)에 딸린 접견소 겸 연회장으로 사용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이곳에서 조인되었으며, 이듬해 황태자[純宗(순종)]와 윤비(尹妃)의 가례(嘉禮)를 치르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덕수궁이 축소되면서 독립적인 건물이 되었으며, 1915년부터 1960년대까지 외국인에게 임대되어 외국인들의 사교모임인 경성구락부(京城俱樂部;Seoul Union)의 사교장소로 쓰였다.

1925년 화재로 인하여 벽면만 남고 모두 타버렸으나 곧 복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83년 서울시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었다.


□. 덕수궁돌담길
덕수궁의 옆, 돌담길은 1910년에 제작돼 대한제국 때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돌담입으로 많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아름다운 길이다.
1970년대형 데이트의 대명사였고, 1998년에는 이 길에 아스팔트를 걷어 내고, 걷기 좋은 길로 재 단장했습니다.

밤이 되면 돌담을 비추는 바닥의 조명과 분수대의 조명도 모습을 드러내어 분위기를 한껏 고조 된다.
거리 곳곳에 벤치가 마련되어 있으며, 도심 속에서 가을을 느끼기 좋은 곳입니다.

덕수궁길은 로터리 분수대에서 갈라져, 미국대사관저로 넘어가는 조용한 산책 길과 정동극장으로 이어지는 전통 정동길, '등기소 가는 길'로 통하는 주변 건축물이 멋진 길이 있다.
길이 시작되는 덕수궁에서는 매일 수문장 교대의식이 열려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 피맛골
피맛골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종로 일대에서 서민들이 말 탄 관리들을 피해 다니는 것을 뜻하는 '피마(避馬)'에서 유래됐다.
해방 전후에 좁은 골목길 곳곳에 서민들을 위한 선술집이며 국밥집 등이 빼곡하게 들어서기 시작해 소박한 서민적 정취가 듬뿍 배어 있는 맛집 골목으로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현대화와 재개발의 대세에 밀려 자리를 내주게 돼 지난해부터 가게들이 하나둘씩 옮겨가고 있다.
2010년 7월이면 완전히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 청계천
서울특별시 종로구와 중구의 경계를 흐르는 하천.
길이는 3670m(법정하천;성북천 합류점~중랑천 합류점), 최대너비는 84m이다.
개천(開川)이라고도 하였다.

북악산·인왕산·남산 등에서 발원한 하천들이 서울 분지에 모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정릉천(貞陵川)·성북천 등과 합쳐진 뒤 살곶이다리[箭串橋] 근처에서 중랑천과 합류한다.

청계천은 서울(당시 한양)이 조선왕조의 수도로 정해지기 전부터 물길이 나 있던 자연상태 하천이었다.

주변에는 시장과 인가가 밀집해 있어서 여름에 큰물 지면 집이나 다리가 물에 잠기거나 떠내려가고,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생기며 인가에서 흘러나온 생활하수 등으로 말미암아 주변지역이 불결해지는 등 문제가 많았다.

이에 태종은 1406~1407년에 걸쳐 하천바닥을 쳐내 넓히고 양쪽 기슭에 둑을 쌓았으며, 1411년(태종 11) 개거도감(開渠都監)을 두어 이듬해 하천공사를 벌였다.
이때부터 <개천>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고 지금의 청계천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태종 때 개천공사는 주로 개천 본류를 정비하는 것이었고, 세종 때 개천공사는 도심 홍수를 예방하기 위한 지천(支川)과 세천(細川) 정비에 중점을 두었다.


구간소요시간
- 09:26 신도림역(전철 1호선)
- 10:02 경복궁역
- 10:15 경복궁역 산행개시
- 10:25 사직공원
- 10:40 인왕산 서울성곽입구
- 11:20 인왕산
- 11:35 인완산 서울성곽입구 원점회귀
- 12:30 서대문터.강북삼성병원
- 12:40 정동극장
- 12:50 덕수궁정문
- 13:10 피맛골
- 13:10-14:50 대림식당에서 점심식사
- 14:53 청계천입구
- 15:50 동대문역
- 15:56 동대문역(전철 1호선)
- 16:24 신도림역

피맛골 '대림식당'
30년 전통의 생선구이 전문점
02-739-0829

지금 피맛골은 재개발계획의 일환으로 모두 철거된 상태이나, 대림식당은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다.
2010년 7월이면 모두 철거가 된다는데, 철거되기 전 마지막으로 피맛골을 찾은 것이다.
5명이 생선구이 5인분, 소주 5병 5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