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강화나들길2코스 20.8km, 제2부 광성포대-강화외성까지 1.8km 2021. 09/15

산솔47 2021. 9. 29. 10:01

강화나들길2코스 초지대교-강화대교까지 20.8km, 제2부 광성포대-강화외성까지 1.8km

2021. 09/15 수요일

 

 

강화-김포를 잇는 평화누리자전거길 연결을 위해 구.강화대교(江華大橋)가 개방되었다. 오늘은 강화나들길2코스 초지진-갑곶돈대까지 17.0km를 걷고자 하는데, 교통편의상 들머리와 날머리를 포함하면 초지대교-강화나들길-)강화대교-성동검문소까지 20.8km나 된다.

 

 

07:03-13:36(6:33)

강화나들길2코스 초지대교-강화대교까지 20.8km/6:13

course

초지대교정류장-초지진(0.8km)-초지진선착장-덕진교-대원군경고비-덕진돈대-남장포대-덕진진(2.8km)-광성포대-용두돈대(3.0km)-손돌목돈대-신미순의총.쌍충비-광성보(0.5km)-광성돈대-광성보삼거리-강화전성.강화외성-오두돈대(3.1km)-화도교-화도돈대(1.1km)-용당돈대-용진진(3.5km)-더러미포구-순국터-강화전쟁박물관-갑곶돈대(3.0km)-강화통제영학당옛터-강화외성진해루-)강화대교-성동검문소정류장(3.0km)

소요시간 : 20.8km/6:13, 평균속도(3.32km/시속), 점심식사(20)

 

강화도에는 섬을 한 바퀴 돌아가면서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방어하기 위해서 진(), 돈대(墩臺), 포대(砲臺) 등의 방어시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강화대교-초지대교까지 16.9km구간에 염하강변을 따라 문화적가치가 높은 시설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광성포대(廣城砲臺)

광성포대는 조선후기 강화도 해안수비를 위해 설치된 방어시설 가운데 하나로 광성보에 속해있는데, 광성보에는 광성포대 외에도 용두돈대, 손돌목돈대, 광성돈대 등이 속해 있다.

 

 

용두돈대(龍墩頭臺)

용두돈대는 강화해협을 지키던 천연요새로 손돌목돈대에 속해 있는 외곽 초소 겸 포대다. 용두돈대에는 江華戰蹟地淨化記念碑(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손돌목돈대(孫乭項墩臺)

손돌목돈대는 조선 숙종5(1679)에 축조된 돈대로 원래 돈대중앙에 3칸의 무기고와 포좌 3개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손돌목(孫乭項)

손돌목은 강폭이 좁고, 이곳을 흐르는 물길(염하)은 빠르고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심해 여간 숙련되지 않은 뱃사공은 이 물길을 함부로 건너지 못한다.

청나라가 쳐들어 왔을 때, 임금이 서둘러 강화도로 피난길에 나서고, 손돌이 손돌목(염하)을 건너는 길안내를 맡았다.

손돌목의 급한 물살로 뒤집힐 것만 같은 배는 임금을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손돌은 태연하게 노를 저어 점점 더 세지는 물살 가운데로 배를 몰아간다.

불안한 임금은 이 뱃사공이 나를 죽이기 위해 배를 이곳으로 모는 것이 아닐까? 라고 의심하게 된다.’

그래서 손돌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손돌은 죽기 전에 제가 띄우는 바가지가 흘러가는 방향으로 배를 몰고 가십시오. 그러면 안전하게 강을 건널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손돌은 죽었고, 바가지를 따라가던 배는 무사히 강화도에 도착하게 된다. 임금이 강화도에 도착하자마자 바람은 세차게 불었고, 물길은 더욱 험해졌다.

임금이 말하기를 으음, 내가 손돌을 의심하였구나. 내 잘못이다. 여봐라, 손돌의 시신을 잘 거두어 후하게 장사를 지내도록 하여라.”

강화도 광성보(용두돈대)에서 마주 보이는 김포의 덕포진의 양지바른 언덕위에 손돌의 무덤이 있는데, 평화누리길1코스 대명항-문수산성입구까지 15.4km를 걷다보면 손돌의 무덤을 볼 수가 있다.

 

 

신미순의총(辛未殉義塚)

신미신의총은 조선 고종8(1871, 신미양요) 광성보일대에서 미해군과 격전을 벌이다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무덤이다.

전사자들 중 어재연, 어재순 형제는 충북 음성군에 안장하고, 남은 군졸 51인은 신원을 알 수 없어 7기의 분묘에 합장하여 이곳에 안장하였다.

 

 

쌍충비(雙忠碑)

쌍추비는 1871년 신미양요 때 광성보전투에서 순절한 중군 어재연외 59인의 순절비다.

 

 

광성보(廣城堡)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있는 광성보는 강화해협을 지키던 강화 12진보 중 하나로 신미양요 때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고려시대 몽고침입에 대항하여 흙과 돌을 쌓아 강화외성을 쌓았다. 광해군 때 이를 고쳐 쌓았고 효종 9(1658)에 여기에 광성보를 만들었다.

숙종 때는 광성보 안에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의 소속 돈대가 완성되었다.

신미양요(1871)때 광성보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해병 450명으로 초지진과 덕진진을 점령한 미군은 극동함대의 함포 지원사격을 받으며 광성보로 쳐들어왔다.

조선군은 화력의 열세에도 끝까지 싸워 중군장 어재연과 그의 아우 어재순, 군관을 비롯한 49인의 장사와 200여명의 군사가 전사하였다.

이때 파괴된 누각과 성곽 등은 1976년 복원되었고, 현재 광성보에는 어재연 등 장수들의 용맹을 기린 쌍충비각과 무명병사들의 무훈을 기린 무명용사비가 세워져 있다.

 

 

광성돈대(廣城墩臺)

광성돈대는 광성보에 속한 3개 돈대중 하나로 숙종5(1679)에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의 승군 8,000명과 어영군 4,300명이 40일 만에 완공하였다.

 

 

강기운의교비(姜寄云義橋碑)

강기운(姜寄云)은 강화군 불은면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본인의 재산을 털어 위로는 사람들이 통행할 수 있는 도로를 만들고, 아래로는 바닷물의 역류를 막을 수 있는 수문을 만들었다.

이에 마을사람들이 감사의 뜻을 모아 공적비를 세웠다. 이 수문은 1990년대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광성보입구교차로와 충장공 어재연장군상

 

 

 

 

강화나들길2코스 초지대교-강화대교까지 20.8km, 제3부 강화외성-용진진까지 7.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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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나들길2코스 20.8km, 제3부 강화외성-용진진까지 7.3km 202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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