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서울종로구 돈의문역사문화유적길 4.3km, 제2부 캠벨사택-사직단까지 2.0km 2022. 10/24

산솔47 2022. 12. 23. 14:40

서울종로구 돈의문역사문화유적길 돈의문터-사직단까지 4.3km, 제2부 캠벨사택-사직단까지 2.0km

2022. 10/24 월요일

 

 

서울시 종로구 돈의문박물관마을주변에는 역사문화유적이 많이 있다.

오늘은 돈의문박물관마을주변의 역사문화유적을 살펴보는 돈의문역사문화유적길을 걷고자 한다.

안내도에 의하면 돈의문역사문화유적길은 정동사거리인 돈의문터에서 시작해 경교장, 경희궁, 서울역사박물관, 돈의문박물관마을, 월암바위, 홍난파가옥, 권율집터, 딜쿠샤, 베델집터, 캠벨사택을 거쳐 인왕산입구에서 두 갈래 길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인왕산입구에서 인왕산국사당, 선바위, 모자바위, 인왕산한양도성곡성, 범바위, 인왕산정상으로 이어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인왕산입구에서 황학정, 단군성전, 사직단으로 이어가는 코스다.

필자는 돈의문터-사직단까지 4.3km를 걷고자 한다.

 

 

 

09:55-11:52

서울종로구 돈의문역사문화유적길 돈의문터-사직단까지 4.3km/1:57

course

서울역사박물관.경희궁정류장-정동사거리.돈의문터-경교장-돈의문박물관마을-월암바위-월암근린공원-홍난파가옥-권율집터-딜쿠샤-베델집터-캠벨사택-인왕산입구-(마을버스탑승)-단군성전-등과정터-황학정-사직단-사직동주민센터

소요시간: 4.3km/1:57, 평균속도(2.21km/시속)

 

 

 

 

상록수어린이집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 입구갈림길에 카카오지도에 의하면 캠벨선교사주택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 건물은 대문이 굳게 잠겨있어 가옥을 둘러 볼 수가 없다.

담장이 높고 나무 때문에 안을 볼 수도 없다.

 

캠벨사택

켐벨 선교사주택은 미국 남감리회가 구한말 서울에 파견한 첫번째 여성선교사 조세핀 켐벨이 살았던 주택으로 선교역사를 증거하는 건축물이다.

선교사주택으로는 드물게 석재로 건축되어 완성도가 높은 건축물이고, 2개의 동으로 구성돼 있다.

한양도성 인접한 입지와 조경과 조화를 이뤄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 내고 있다. 1948년 대대적인 수리과정을 거쳐 회색 석재로 변경됐다.

출처: 대문

 

 

 

다시 인왕산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면 이내 인왕산입구에서 한양도성 인왕산순성안내쉼터를 만난다.

그 동안 필자는 인왕산국사당, 선바위, 모자바위, 인왕산한양도성곡성, 범바위, 인왕산정상으로 이어가는 코스를 여러 번 다닌바 있어 오늘은 생략하고, 단군성전과 황학정을 거쳐 사직단에서 마무리하기로 한다.

 

 

 

단순성전에 인왕산 방향으로 인왕산로를 따라 150m쯤 올라가면 도로변에 등과정터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바위에 登科亭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등과정표지석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황학정을 거쳐 사직단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등과정터(登科亭址)

등과정은 조선시대 무사들의 궁술연습장으로 유명한 사정(射亭)이다.

사정이란 활터에 세운 정자를 말하는데, 등과정은 서울 서쪽 지역에 있는 다섯 군데 이름난 사정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갑오개혁 이래 궁술(弓術)이 폐지되면서 헐렸다.

 

 

 

황학정(黃鶴亭)

황학정은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조선 말기의 정자로 1898년 어명에 의하여 경희궁의 회상전(會祥殿) 북쪽 궁장(宮墻) 가까이에 꾸며졌던 궁술연습을 위한 사정(射亭)이다.

1922년 일본사람들이 경성중학교(京城中學校)를 짓기 위하여 경희궁을 헐 때, 현재 위치로 이건하였다고 한다.

한말에는 도성 안 서쪽에 다섯 군데의 사정이 있어서 이것을 서촌오사정(西村五射亭)’이라 하였는데, 옥동(玉洞)의 등룡정(登龍亭), 삼청동의 운룡정(雲龍亭), 사직동의 대송정(大松亭), 누상동의 풍소정(風嘯亭), 필운동(弼雲洞)의 등과정(登科亭)이 그것이다.

현재 황학정이 서 있는 자리는 원래 오사정의 하나인 등과정이 있던 자리로 오사정이 모두 자취를 감추어버린 오늘날에도 황학정에서는 때때로 궁술행사가 거행되어 옛 무인들의 기개를 보여주고 있다.[daum백과]

 

 

 

 

사직단(社稷壇)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사직단은 종묘(宗廟)와 함께 나라의 신과 곡식을 맡은 신에게 제사지내는 제단으로 도성의 서쪽에 위치하며 사단은 동쪽, 직단은 서쪽에 설치한다.

국토와 오곡은 국가와 민생의 근본이므로 고대에는 국가와 민생의 안정을 기원하는 의미로 사직을 설치하고 제사를 지냈다. 사직단이 설치된 것은 삼국시대부터인 것으로 전해진다.

사직단은 정4각형의 평면이며 한 변의 길이는 25, 높이는 3척이었다. 단의 사방에는 3층의 섬돌이 설치되어 있으며, 사단과 직단 사이의 간격은 5척이었다.중춘·중추·납일이 되면 대향사를, 정월에는 기곡제를, 가뭄 때는 기우제를 지냈다. 189710월 조선왕조는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원구단에서 천지제를 행한 후 사직단의 지위를 태사·태직으로 올렸다. 그러나 사직단은 일제강점기를 맞으면서 기능을 상실했다.[daum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