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서울종로구 서촌겸재그림길 6.4km길잡이 2022. 10/30

산솔47 2022. 12. 26. 14:13

서울종로구 서촌겸재그림길 경복궁역-수성동계곡까지 6.4km길잡이

2022. 10/30 일요일

 

 

조선시대 역관이나 의관 등 전문직인 중인들이 모여 살았던 서촌한옥마을은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 근대에는 화가 이중섭과 이상범, 시인 윤동주와 이상 등의 예술가들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인터넷정보에 의하면 서촌겸재그림길은 경복궁역-독립문역까지로 되어 있으나 필자는 일부코스를 변경하여 경복궁역-수성동계곡까지 6.4km로 한다.

필자는 2014. 01/11일 서촌한옥마을길 5.4km2021. 10/09일 인왕산백운동천계곡-수성동계곡까지 2.5km를 걸은바 있다.

2014. 01/11

서울종로구 근대 예술가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 서촌한옥마을길 5.4km

길잡이: https://sansolsanbang.tistory.com/2457

사   진: https://sansolsanbang.tistory.com/2458

2021. 10/09

서울종로구 인왕산백운동천계곡-수성동계곡까지 2.5km

길잡이: https://sansolsanbang.tistory.com/5180

사   진: 1 경기상고-천수경전망대까지 https://sansolsanbang.tistory.com/5181

            2 천수경전망대-수성동계곡까지 https://sansolsanbang.tistory.com/5182

 

 

출발시점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3번 출구에서 100m지점 스타벅스커피를 지나 오른쪽길로 꺽어져 70m지점 대림미술관 앞에서 왼쪽길로 꺽어진다.

 

 

10:10-13:23

서울종로구 서촌겸재그림길 경복궁역-수성동계곡까지 6.4km/3:13

course

경복궁역(2)-우리은행-옥류동천길-서울문화예술교류협회-이상의집-통인시장쉼터-자수궁터-세종아파트.군인아파트-코리아나하우스-우당기념관-서울농학교(1.3km)-선희궁터-종로장애인복지관-경복고등학교-조원집터.운강대-정선집터-서울청운초등학교-백세청풍(百世淸風)-주한브루나이대사관-경기상고-청송당바위-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백운장터(2.9km)-백운동계곡.백운동천(白雲洞天)-청운공원공중화장실(0.4km)-인왕산숲길-이빨바위-가온다리(출렁다리)-무무대전망대-수성동계곡-수성동계곡정류장(1.8km)

소요시간: 6.4km/3:13, 평균속도: 1.96km/시속

 

 

경복궁역2번 출구에서 자하문로를 걷고, 200m지점 우리은행갈림길에서 왼쪽 자하문로7길로 진입한다. 조금 걷다보니 이상의 집을 만난다.

이상(李箱)

이상(李箱 1910~1937)은 서울출생으로 본명은 김혜경이고, 시인, 소설가로 활동했다.

1931조선과 건축이상한 가역 반응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고, 1930년대 초부터 초현실주의적이고 실험적인 시를 발표하였다.

 

통인시장쉼터에 도착한다.

이곳은 세종마을입구로 종로구 통인동 118-1세종대왕 나신곳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통인시장쉼터에서 필운대로를 따라 걷는데 도로변에 자수궁터표지석을 만난다.

자수궁터(慈壽宮址)

자수궁(慈壽宮)은 조선 태조의 일곱째 아들 무안대군 방번(1381-1398)이 살던 집으로 문종 때 세종 후궁들의 거처로 삼은 이후 궁궐에서 나온 후궁들이 살았으며, 자수원이라고도 하였다.

 

다시 걷기를 계속한다. 서울맹학교를 만나고 도로건너편에서 우당기념관을 만난다.

우당기념관

우당기념관은 중국으로 망명하여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우당 이회영 선생 및 형제(건영.석영.철영.시영.호영) 그리고 그들과 뜻을 같이한 애국열사 동지들을 기념하는 곳이다.

남산예당공원지하1층에 이회영기념관이 별도로 있다.

2021. 08/22

서울 남산국치길 제2부 노기신사터-일본군위안부기억의 터까지 1.8km

사 진: https://sansolsanbang.tistory.com/5149

 

서울맹학교를 지나면 서울농학교가 있다. 두 학교는 사실상 붙어있다.

서울농학교 교내에 선희궁(宣禧宮)이 있다. 그런데 선희궁을 둘러보고자 했으나 정문에서 들어갈 수가 없단다.

학교 방침이란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선다.

필자는 2014. 01/11일 서촌한옥마을길 5.4km를 걸을 때 선희궁(宣禧宮)을 둘러본바 있다. 아래사진은 그때 찍은 사진이다.

2014. 01/11

서울종로구 근대 예술가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서촌한옥마을길 5.4km

2014. 01/11

사 진: https://sansolsanbang.tistory.com/2458

 

선희궁지(宣禧宮址)

서울 종로구 신교동 산1-1, 서울농학교 내에 있는 선희궁지는 조선 제21대 영조(17241776 재위)의 후궁(後宮)>이며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생모(生母) 영빈(暎嬪) 이씨(李氏)의 신주(神主)를 봉안(奉安)하고 제사했던 왕실의 사묘(私廟)인 선희궁(宣禧宮)이 있던 곳이다.

왕실의 사묘라 함은 조선시대 정실(正室) 왕비(王妃)가 아닌 후궁(後宮)에게서 태어난 임금이 그의 모친의 신위를 모신 사당을 말한다.

영조 40(1764)에 영빈 이씨가 사망함에 이듬해 시호(諡號)를 의열(義烈)이라 추증(追贈)하고 묘의 이름을 의열묘(義烈廟)라 부르다가, 정조 12(1788)에 선희궁(宣禧宮)이라 고쳤다.

고종 7(1870)에 신주를 육상궁(毓祥宮)으로 옮겨 모셨다가 건양(建陽) 원년(1896)에 선희궁(宣禧宮)에 다시 모셨고, 융희(隆熙) 2(1908)에 다시 육상궁(毓祥宮)으로 옮겨 모셨다.

 

 

선희궁은 관람하지도 못하고 아쉬운 마을 뒤로하고 자하문로를 건너 경복고등학교로 발걸음을 옮긴다.

경복고등학교 교내에는 조선문인 조원의 집터인 운강대와 겸재 정선의 집터가 있기 때문이다.

경복고등학교에 들어서 오른쪽 길로 올라가다가 보면 꾀꼬리동산을 지나자마다 시계탑이 서 있는 갈림길에 운강대(雲江臺)안내판과 함께 바위에 새겨진 雲江臺 각자를 마날 수 있다.

조선문인 조원의 집터 운강대(雲江臺)

경복고등학교 교내로 들어서면 운강대와 효자유지 표지석이 보이는데, 오늘날 효자동의 유래가 된 선조 때 승지를 지낸 조원의 집터다.

조원의 두 아들이 임진왜란 중 왜군이 어머니를 해치려 하자 이를 막으려고 대항하다가 왜군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무지렁이가 쓰는 작은기록)

출처: 무지렁이가 쓰는 작은기

 

 

겸재 정선의 집터는 운강대 뒤편 잔디밭공원에 있는데, 정선의 집터를 표시한 바위에는 정선의 자화상도 그려져 있다.

조선중기 화성 정선(鄭敾)의 집터

겸재 정선(鄭敾1676-1759)은 숙종2년 병진년에 한성부 북부 순화방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종로구 청운동 89번지 인왕산 동쪽, 북악산 서남쪽 기슭 경복고등학교 교내로 추정된다.

겸재 정선은 진경산수화로 성공한 후 지금의 종로구 옥인동에 있었던 자수궁 근처로 이사했으므로 장동8경의 무대에서 두루 산 셈이다.

출처: 나홀로테마여행

 

 

경복고등학교를 빠져나와 자하문로를 걷고, 이제는 경기상고를 찾아간다. 경기상고 안에는 청송당(聽松堂)과 청송당유지(聽松堂遺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전에 정보 없이 간다면 청송당터(聽松堂址)와 청송당유지(聽松堂遺址) 바위글씨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사전정보 없이 경기상고에 들어서니 막막하다.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고, 교정 앞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 아름답다.

아름드리 소나무길을 끝까지 걸었지만 청송당터는 찾을 수가 없다.

다만 소나무길 끝에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아래 바위위에 ‘4.19학생혁명순국학도기념비만이 자리하고 있다.

도대체 청송당터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다시 입구로 나가 교정입구에 있는 학교안내판에서 찾아보기로 한다.

그런데, 그런데 있다.

현위치에서 대각선으로 맨 끝 구석에 울타리와 접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찾아가기도 쉽지 않다.

어떻게 어떻게 和亭 李相德 상을 지나 찾아갔더니 청송당터(聽松堂址)표지석과 그 뒤쪽으로 바위에 聽松堂遺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청송당터(聽松堂址)와 청송당유지(聽松堂遺址)

종로구 청운동에 있던 청송당(聽松堂)은 조선초기 성수침(成守琛 1493-1564)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학문에 전념하던 곳으로 백악산 서편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청송당(聽松堂) 당호(堂號)는 기묘명현(己卯名賢-정암 조광조가 화를 입을 때

같이 당한 선비들) 중 하나로 성수침 집안과 세교(世交)가 있던 눌재(訥齋) 박상(朴祥 1474-1530)이 지었다.

성수침(成守琛)의 청송당(聽松堂)은 지금 남아 있지 않지만 경기상고 교정뒤편에 청송당유지(聽松堂遺址) 글씨가 돌에 새겨져 있다.

출처: 진이와 우림이네

 

경기상고를 나와 생각하니 앗백세청풍바위를 들리지 못했다.

그래서 백세청풍(百世淸風)바위를 둘러보기 위해 다시 자하문로를 따라 걸어서 내려가다가 왼쪽에 청운초등학교를 끼고 자하문로33길로 진입한다.

한참동안 주택가를 걸어 올라가는데, 이정표가 없어 백세청풍(百世淸風)바위가 어디에 있는지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필자는 사전에 정보를 입수하고 갔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입구에서 약 250m쯤 올라가면 자연바위에 인공담벼락을 쌓고 그 위에 집을 지었는데, 그 자연석에 百世淸風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글씨가 바위색깔과 비슷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을 것 같다.

 

백세청풍바위는 김상용의 집터가 있는 곳에 있고, 그 곳에 김상용집터표지판과 백세청풍바위 百世淸風岩표지판이 있다는데 필자는 찾지 못해서 인터넷에서 퍼왔다.

백세청풍(百世淸風)

백세청풍(百世淸風)은 오랫동안 부는 맑은 바람 또는 영원토록 변치 않는 맑고 높은 선비가 지닌 절개라는 의미다.

백세청풍(百世淸風) 각자가 있는 이곳은 인왕산계곡 중 가장 경치가 아름답다고 하는 "청풍계"지역으로 김상용(1561~1637)의 집터가 있었던 곳이다.

김상용은 인조 때 척화파로 유명한 김상헌의 형으로 병조·예조·이조 판서를 지내고 1632년 우의정에 발탁되었으나 늙었다는 이유로 사퇴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76세의 노구로 종묘사직의 신주와 위판을 받들고 봉림대군,세자빈,원손을 수행하여 강화도로 피난갔다.

그러나 조선 최악의 무능한 장군 김경징의 방심으로 청군에게 성이 함락되자 성의 남문루에서 화약을 터뜨려 순절함으로써 충신의 대명사로 추앙받았다.

그는 아름다운 청풍계 집 뒤 커다란 바위에 "百世淸風(백세청풍)"각자를 남긴다.

명필이었으나 자신의 글씨보다 중국 주자의 글씨를 탁본해서 새겼다.

그 후 송시열이 백세청풍 각자 옆에 있는 천유대라는 바위에 大明日月(대명일월)글자를 새겨 "대명일월 백세청풍"이 명나라에 대한 조선의 영원한 충절을 상징하는 글로 회자되었다.

대명일월은 명나라는 해와 달이라는 뜻이다.

소현세자가 젊은 시절 이곳을 방문하여 읆은 시가 집기둥에 주련으로 걸려있었다고 한다.

김상용의 집 입구에는 후손들이 충절의 표상인 정문(旌門)을 세웠는데, 그의 손자와 후손이 효자로 죽자 또 다른 정문이 세워져 3개의 정문이 집 앞에 있었다고 한다.

충절과 효심의 집안으로 이어 온 김상용 김상헌 후손은 그 후 조선말 안동 김씨(장동 김씨)의 세도정치로 이어진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 회사가 대명일월이 새겨진 바위를 깨뜨려 지금은 "백세청풍" 네 글자만 남았다.

기암절벽 노송이 어우러진 인왕산의 최고 명승지였던 청풍계 풍광을 경재 정선은 그림으로 남겼다.

청풍계 그림은 6점이 전하는데 2점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고, 나머지 4점은 각각 국립중앙박물관,고려대박물관,동아대박물관,삼성리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출처: 역사자연이야기

 

 

백세청풍바위를 뒤로하고 복잡한 주택가 골목길을 돌아돌아 자하문로로 내려와 도로를 건너 자하문터널 방향으로 진행한다.

경기상고정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방향으로 이정표를 따라 언덕으로 올라간다.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를 만나는데, 이곳이 예전에 백운장(白雲莊)이 있던 곳이다.

백운장터(白雲莊址)

백운장(白雲莊)은 김가진 일가의 중국망명 이후 일제강점기 동안 고급요리집으로 사용되었던 기록과 사진이 확인되고 있으며, 해방이후부터 1961년 박정희 정권 때 불하 결정되기 전까지 요정정치가 이루어진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은 1915년 일본인 키타무라 세이타로(北村淸太郞)가 청향원(淸香園)이라는 이름으로 지었다가 1929년에 이름을 바꾸었으며,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에서 19629월에 이 일대를 구입하였다.(위키백과)

 

 

언덕길 끝에서는 더는 길이 없이 막혔다.

단지 숲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희미한 숲길이 있을 뿐이다.

이 숲길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서면 이곳이 바로 예전에 인왕산아래 경치 좋기로 유명했던 청풍계(淸風溪)이고, 백운동천(白雲洞天) 각자가 있는 곳이다.

청풍계(淸風溪)

청풍계(淸風溪)는 인왕산(仁王山) 아래 청운동의 일부 계곡을 포함한 지명으로 한양에서 자연 경치가 좋기로 알려진 곳으로 예부터 문인들과 묵객들이 자주 방문하여 시회(詩會)를 개최하였다.

또한 이 일대에 김상용(金尙容)이 거처를 마련하면서 경사스러운 날이면 친척과 친구들과 함께 자연의 풍경을 관람하며 즐겼다.

 

백운동천(白雲洞天)

백운동천(白雲洞天) 각자는 인왕산계곡 동농(東農) 김가진(金嘉鎭 18461922)의 집터에 있는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새겨져 있고, 그 옆에 세로(횡서)光武七年癸卯’(광무칠년계묘), ‘中秋東農’(중추동농)이라 새겨져 있다.

광무 7년은 1903년을 가리키고, 중추는 음력 9월을 말한다. 동농(東農)은 김가진(金嘉鎭, 18461922)의 호이다.

1903년 음력 9월에 동농이 백운동천 글씨를 새겼다는 말이다.

이 일대가 1964년까지 그의 별서와 백운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던 곳이었음을 보았을 때 그가 새긴 것으로 보인다.

김가진은 사직동 54번지에 고택이 있었으며, 고종 때 법무대신을 지낸 뒤 항일운동가로서 한학과 서예로 뛰어난 인물이다.

그는 예조판서 김응균(金應均)의 아들로 본관은 안동, 자는 덕경(德卿)이다.

1886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부수찬, 주일본공사(駐日本公使), 참찬관, 동부승지를 거쳐 주일판사대신으로 수년간 일본 동경에 주재하였다.

갑오경장이 실패한 뒤에는 18967월에 조직된 독립협회의 회원으로 선임되었으며, 이때 독립문현판석의 독립문글씨를 한자로 한글로 그가 썼다.

그는 경술국치 이후 집 앞에 날마다 태극기를 높이 달아 놓았다 하여 깃대박이집이라고도 하였다.

일제강점 후 남작(男爵) 칭호를 받았지만 즉시 반납하고, 31운동에 참가하였고, 비밀결사인 대동단(大同團)의 총재 및 고문으로 추대되어 상해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였다.

1919년에 74살의 나이에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상하이로 망명해서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1920년에는 대동단 총재의 명의로 포고문, 통고문을 배포했으며, 대동단의 박용만(朴容萬), 나창헌(羅昌憲), 손영직(孫永稷)고광원(高光元) 등과 공동명의로 갹금권고문(醵金權告文)을 발표하였다.

그 뒤 단원들이 붙잡혀 대동단이 해체된 뒤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고문으로 활약하다가 상해에서 세상을 떠났다.

출처: 전통문화지도자회

 

 

백운동천(白雲洞天) 청풍계를 빠져나가면 청운공원이고, 청운공원에서 인왕산자락길을 따라 수성동계곡으로 이어갈 수 있는 인왕산자락길표지석이 입구에 세워져 있다.

이제부터는 인왕산자락길을 걷는다.

이빨바위를 만나고, 두꺼비바위를 만나고, 가온출렁다리도 건넌다.

몇 개의 쉼터도 지난다.

그리고 무무대(無無臺)에 올라선다.

인왕산자락길에 위치한 무무대(無無臺)는 북악산과 청와대, 남산과 서울시내를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탁트인 곳에 위치한 전망대다.

수성동(水聲洞)계곡으로 내려간다.

 

수성동(水聲洞)계곡

서촌마을의 끝자락에 위치한 서울 종로구 옥인동 인왕산 수성동(水聲洞)계곡은 조선시대 물소리가 유명한 계곡이라 하여 그렇게 불렸으며, 수성동은 경관이 뛰어나 겸재 정선의 그림 진경산수화에도, 시인 묵객들의 노래에도 자주 등장한 곳이다.

2010년 옥인시범아파트를 철거하고,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속 인왕산 수성동 계곡의 모습으로 복원하어 2012711일부터 일반에 개방되었다.

수성동(水聲洞)계곡에서 서촌겸재그림길 경복궁역-수성동계곡까지 6.4km의 트래킹을 마무리한다.

 

 

13:30 수성동계곡에서 종로09번 마을버스탑승

13:41 조선일보에서 하차

 

 

 

 

서울종로구 서촌겸재그림길 경복궁역-수성동계곡까지 6.4km, 제1부 경복궁역-백운동계곡까지 4.2km

https://sansolsanbang.tistory.com/5539

 

서울종로구 서촌겸재그림길 6.4km, 제1부 경복궁역-백운동계곡까지 4.2km 2022. 10/30

서울종로구 서촌겸재그림길 경복궁역-수성동계곡까지 6.4km, 제1부 경복궁역-백운동계곡까지 4.2km 2022. 10/30 일요일 조선시대 역관이나 의관 등 전문직인 중인들이 모여 살았던 서촌한옥마을은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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