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서울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 유관순열사합장묘를 찾아서 1.8km 2022. 11/22

산솔47 2023. 1. 22. 08:55

서울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 유관순열사합장묘를 찾아서 1.8km

2022. 11/22 화요일

 

 

2022. 11/14일 아름다운 단풍으로 곱게 물든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단풍나무숲길 6.2km와 유관순유적지 4.0km를 걸은 바 있다.

그런데 천안시 병천면 높이 169.9m의 동네 뒷산 같은 매봉산자락에 있는 유관순열사의 생가와 유관순열사의 초혼묘가 있다.

2022. 11/14

천안 독립기념관단풍나무숲길 6.2km와 유관순유적지 4.0km

길잡이: https://sansolsanbang.tistory.com/5553

사   진: 1 유관순열사생가-유관순열사유적지까지 1.2km https://sansolsanbang.tistory.com/5556

            2 유관순열사유적지-아우내장터까지 2,8km https://sansolsanbang.tistory.com/5557

 

초혼묘(招魂墓)는 시신 없이 혼을 모시는 묘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유관순열사의 실제 묘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이 궁금했는데,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망우리공동묘지에 있단다.

지금은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오늘은 망우역사문화공원을 찾아 유관순열사의 묘를 찾아보기로 한다.

 

집을 나서 버스타고, 지하철타고, 또 다시 버스타고 2시간15분만에 망우역사문화공원입구에서 내린다.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들어서는 입구부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도로와 나란히 데크길도 조성되어 있다.

도로를 따라 쭉올라가면 중랑망우공간주차장을 지나 망우역사문화공원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 둘레길(도로)의 입구갈림길에 도착한다.

유관순열사분묘합장묘는 둘레길(도로)과는 별도로 왼쪽숲속으로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다.

이 넓은 곳 어디쯤에 있을까?

많이 걱정했는데, 입구에 이태원합장비(유관순열사) 85m” 이정표가 길을 안내하고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그 위치를 쳐보니 주소가 구리시 교문동 산84-1번지 쯤 되는 것 같다.

 

 

12:00-12:48

서울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 유관순열사합장묘를 찾아서 왕복1.8km/48

course

망우리고개-망우역사문화공원게이트-중랑망우공간주차장-산책로갈림길-이태원묘지무연분묘합장비(梨泰院墓地無緣墳墓合葬碑).유관순열사분묘합장표지비-산책로갈림길-중랑망우공간-망우로육교-망우리고개탑-망우리고개

소요시간: 왕복1.8km/48, 평균속도(2.05km/시속)

 

 

 

서울시와 구리시의 경계선인 망우리고개

 

 

 

이태원묘지무연분묘합장비(梨泰院墓地無緣墳墓合葬碑)

경성부는 1933년 경기도 구리면 망우리에 공동묘지를 개설하고 부내의 공동묘지를 순차적으로 없앴다.

이태원공동묘지는 1935년부터 미아리와 망우리로 이장 개시되어 193648일에 완료되었는데, 경성부 위생과는 무연고 묘로 판명된 28,000여기를 화장하여 망우리공동묘지에 합장 후 이 위령비를 세웠다.

한편 유관순열사는 19209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여 일제의 삼엄한 경비하에 이태원공동묘지에 매장되어 묘비도 없이 지내다가 이태원공동묘지가 없어지면서 아무도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하니, 이 합장비는 유관순열사를 가장 가깝게 추모할 수 있는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유관순열사에게 196231일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고, 201931일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으로 승격 추서하였다.

 

 

 

유관순열사분묘합장묘

유관순열사는 19021216일 충남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현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생가길 18-2)에서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의 32녀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이화학당 고등과1학년인 유관순열사는 31일 파고다공원, 35일 남대문역(현 서울역) 독립만세운동에 직접 참여하였다.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으로 내려온 유관순열사는 어른들과 독립만세운동을 협의하며 태극기를 손수 만들어 41일 아우내장터에서 3,000여 군중에게 나누어주고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 때 유관순열사의 부모를 포함 19명이 순국하였고, 30여명이 부상당하였다.

일본헌병대에 주모자로 체포된 유관순열사는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어도 계속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192092818세의 꽃다운 나이에 그토록 목마르게 기다리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순국하였다.

19201012일 이화학당에서 유관순열사의 시신을 인도하여 1014일 정동교회에서 김종우목사의 집례로 장례식을 거행한 후 이태원공동묘지에 표석도 없이 안장되었다.

경성부가 이곳을 1935년부터 19364월까지 망우리공동묘지로 이장할 때 유관순열사의 묘를 포함한 연고자가 없는 28,000여 분묘를 화장하여 망우리공동묘지에 합장하고 위령비를 세웠다.

그리고 이곳에 3.1독립운동의 상징인 민족의 딸 유관순열사분묘합장표지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