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파주 장지산용암사 용미리마애이불입상 2016. 11/11

산솔47 2016. 12. 18. 14:22

파주 장지산용암사 용미리마애이불입상(龍尾里磨崖二佛立像) 왕복0.7km

2016. 11/11 금요일

 

Course

용주사.용미리마애이불입상정류장-장지산용암사-용미리마애이불입상-용암사-용주사.용미리마애이불입상정류장(왕복0.7km)

 

교통정보

1.풍경마을에서 388번 버스타고, 걸포공원후문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 김포33번 버스로 환승, 대화역에서 내려 지하철3호선 타고 삼송역에서

  내린다.

2.삼송역8번 출구에서 100m직진,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 삼송역사거리.지축차량기지입구정류장에서에서 703번 버스타고 용주사.

  미리마애이불입상에서 내린다. 소요시간(1시간), 배차간격(10)

3.올 때는 갈 때의 역순으로 돌아오면 된다.

 

장지산(長芝山)용암사(龍岩寺) 용미리마애이불입상(龍尾里磨崖二佛立像)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산8,9번지

마애이불입상은 광탄면 용미리 장지산(長芝山)에 위치한 용암사(龍岩寺) 경내에 위치하여 있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이 석불입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쌍미륵 석불입상으로 천연바위벽을 이용하여 제작하였다. 거대한 자연석을그대로 이용해 그 위에 목, 얼굴, 갓 등을 따로 만들어 얹어놓아 위압감(威壓感)이 느껴진다.

왼쪽의 둥근갓을 쓴 불상(원립불, 圓笠佛)은 목은 원통형으로 당당한 가슴을 드러냈으며 몸체는 법의(法衣)로 감싸고 있는데 양쪽으로 내려진 옷자락을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비록 바위의 제약으로 목과 가슴이 아주 자연스럽지는 못하나 사각형의 얼굴에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이 안동마애석불(安東磨崖石佛)과 비슷하다.

오른쪽의 네모난 갓을 쓴 불상(방립불, 方笠佛)은 합장한 손 모양만 다를 뿐 조각된 수법은 왼쪽의 불상과 비슷하다.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坡州 龍尾里 磨崖二佛立像. 보물 제93)은 거대한 천연암벽에 2구의 불상을 우람하게 새겼는데, 머리 위에는 돌 갓을 얹어 토속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까닭에 신체 비율이 맞지 않아 굉장히 거대한 느낌이 든다.

이런 점에서 불성(佛性)보다는 세속적인 특징이 잘 나타나는 지방화 된 불상이다. 왼쪽의 둥근 갓을 쓴 원립불(圓笠佛)은 목이 원통형이고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연꽃을 쥐고 있다. 오른쪽의 4각형 갓을 쓴 방립불(方笠佛)은 합장한 손모양이 다를 뿐 신체조각은 왼쪽 불상과 같다.

지방민의 구전에 의하면, 둥근 갓의 불상은 남상(男像), 모난 갓의 불상은 여상(女像)이라 한다.

 

마애불의 전설

고려 선종(宣宗, 재위 1083~1094)은 후사가 없어 고민했다. 후사를 위해 셋째 부인으로 원신궁주(元信宮主)를 맞았으나 역시 후사가 없었다. 어느 날 후궁인 원신궁주가 꿈을 꾸었다.

두 스님이 나타나 "우리는 파주 장지산 남쪽 기슭에 있는 바위틈에 머물면서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도를 아직 이루지 못했는데 먹을 것이 떨어져서 그러니 먹을 것을 좀 주시오."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원신궁주의 꿈 이야기를 들은 선종이 사람을 보내 장지산 남쪽 기슭을 살펴보니,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었다. 며칠 후 원신궁주는 다시 꿈을 꾸었는데, 두 스님이 다시 나타나 왼쪽 바위는 미륵불상으로, 오른쪽 바위는 미륵보살상으로 모실 것을 당부하며, "모든 중생이 와서 공양하며 기도하면 아이를 바라는 이는 아이를 얻고 병이 있는 사람은 병을 고칠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선종은 그 바위에 불상을 모시고 절을 지어 원신궁주와 함께 정성을 다해 불공을 올렸다. 그리고 그 해 원신궁주가 회임을 하고 왕자 한산후(漢山侯)를 낳았다.

 

 

 

 

점심식사(7,900원)

장지산용암사 용미리마애이불입상 탐방 후 돌아오면서 전철3호선 삼송역8번 출구 '수상한삼겹'에서 생삼겹살(200g)과 된장찌개로 점심식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