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홍주성천년여행길 9.8km, 제1부 홍성역-매봉재까지 3.5km

산솔47 2019. 1. 2. 20:13

홍성 낭만이 있는 여행, 홍주성천년여행길 9.8km, 제1부 홍성역-매봉재까지 3.5km

2018. 12/25 화요일



홍주성천년여행길은 홍성역을 기점으로 한 바퀴 돌아서 홍성역으로 되돌아오는데 8.0km로 알려져 있는데, 아마도 홍주의사총이나 홍주성 등 유적지의 내부를 둘러보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길로 책정한 것 같다.

그래서 필자는 실제로 걸은 길과 홍주의사총의 묘비까지, 홍주성의 홍주성역사관까지 등을 둘러보는 코스로 인터넷지도에서 거리를 환산한 것이 9.8km이므로 이를 기준으로 하고자 한다.

course

홍성역-고암근린공원-장군상오거리(김좌진장군상)-홍성전통재래시장-홍성대장간-대교2어린이공원.대교리미륵불-대교사거리-의사1-홍주순교성지-홍주의사총(2.1km)-창의사-주의병기념탑-들꽃사랑방-매봉재-매봉(1.4km)-교동마을회관-홍주향교-월계천.광경교-대교공원-백월교-북문(망화문)-서문(경의문)-홍주성벽-홍주성남문(홍화문)(2.3km)-홍주성역사공원(홍주성역사관)-안회당.여하정-홍성군의회.홍성군청-홍주아문-)홍성읍사무소-동문(조양문)-명동상점가-홍성동문동당간지주(2.2km)-뽕뽕다리-홍성전통시장-장군상오거리-고암근린공원-홍성역(1.8km)

소요시간: 9.8km/3:47, 평균속도(2.61km/시속), 점심식사(28), 소요비용(14,200)



홍주성천년여행길시점인 홍성역

충청남도 홍성에는 홍주성천년여행길이 있다. 홍성은 1914년 이전까지만 해도 홍주라 불리던 곳이다. 홍주성천년여행길은 홍성역을 기점으로 한 바퀴 돌아서 홍성역으로 되돌아오는 코스인데 8.0km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홍주의사총이나 홍주성 등 유적지의 내부를 둘러보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길로 책정한 것 같다.

그러나 필자는 실제로 걸은 길과 홍주의사총의 묘비까지, 홍주성의 홍주성역사관까지 등을 둘러보는 코스로 인터넷지도에서 거리를 환산한 것이 9.8km이므로 이를 기준으로 하고자 한다.




홍성역에서 역광장으로 나가면 돌기둥에 새겨진 한용운, 성삼문 등 두 분의 흉상이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고, 홍성(홍주성지)순례안내도와 홍주성천년여행길 지도가 길을 안내하고 있다.



홍성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분들이 많이 태어난 곳이다.

고려의 명장 최영장군을 비롯해서 조선의 절신 성삼문, 청산리전투의 백야 김좌진장군,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 전통춤의 대가 한성준선생, 한국의 대표화가 고암 이응노화백, 조산후기의 학자 남당 한원진, 판소리의 대가 항성준, 조선말기 문신이자 의병장 지산 김복한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롯데마트.홍성종합버스터미널



고암근린공원




청산리전투의 백야 김좌진장군 동상








홍성전통재래시장

홍성전통재래시장은 1일과 6일에 열리는 5일장인데, 오늘은 25일이라 장은 안 열리고, 지금시간이 08:17분이라 이른 시간이어서 한산하기만 하다.








홍성대장간









대교리 석조미륵보살입상(石造彌勒菩薩立像)

홍성 대교리에 있는 석조미륵보살입상(石造彌勒菩薩立像)은 조선시대의 석조미륵보살입상으로 이곳에 있던 고려시대의 절 이름을 따 광경사지미륵불이라고도 부른다. 1984517충청남도의 문화재자료160호로 지정되었다.

직사각형의 화강암석재에 얼굴만 둥글게 다듬고 눈··입을 낮게 돋을새김 하였다. 주먹코와 두툼한 입술, 길 다란 눈 등이 매우 익살스럽다.

신체의 윤곽은 앞면만 선으로 조각했고,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가슴에서 발까지 U자형의 옷 주름을 여러 개 표현했다.

오른손은 가슴에 붙이고 왼손은 손바닥이 보이게 든, 시무외인을 하고 있다. 조각수법이 거칠고 비례감이 없는 점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위키백과]



















홍주순교성지(생매장지)

200년 전 박해시대에 천주교는 조정에서 금했던 종교였다. 홍성을 포함한 내포지역은 일찍부터 천주교가 크게 퍼진 곳으로, 1791년 신해박해 시기부터 1866년 병인박해 때까지 80여 년간 홍주는 순교의 땅이었다.

홍주성지는 1791년 신해박해의 여파로 원시장 베드로가 체포되어 순교함으로써 순교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였다. 문헌상으로 발견된 순교자들의 숫자만 해도 212무명의 순교자까지 포함한다면 천여 명이 넘는 신자들이 순교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순교자가 많이 나온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워낙 많은 순교자가 있었기에 홍주성지는 6곳의 순교터를 순례하는 성지가 되었는데, 순교사적 의미가 큰 홍주목사 동헌교수형터(감옥터), 홍주진영, 저잣거리, 참수터, 생매장터 등 6곳을 순례할 수 있는 천주교순례길도 있다.

홍주순교성지가 된 생매장터는 천주교 4대 박해중 하나인 병인박해 때 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수용할 감옥이 부족하자 그 대응책으로 일부 천주교신자들을 생매장한 곳이다.

이곳은 월계천과 홍성천이 만나는 가장 넓은 모래사장이 있어서 죄인들을 생매장하거나 시신을 이곳에 버리기에 적합한 장소였다고 한다.





홍주의사총(洪州義士塚)

홍주의사총(洪州義士塚)은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에 있는 대한제국시대의 무덤으로 구한말 홍성군지역에서 있었던 의병활동가운데 1906년 홍주성전투에서 순절한 병오항일의병들의 유해를 모신 묘소다.

2001817일 대한민국사적 제431호로 지정되었고, 종전명칭은 '홍성의사총'이었으나, 20121212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최된 제12차 사적분과위원회에서 '홍성홍주의사총'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05년 일본과의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각지에서 의병활동이 일어났는데, 충청남도 홍성지방에서는 이조참판 민종식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이 전개되었다.

1906년 고종황제의 명을 받아 의병을 모아 남포와 보령에 있는 일본군을 습격하여 병기를 탈취하였으며, 320일에는 홍주성을 함락시켰다. 그러나 일본군의 대포공격이 본격화되면서 의병 수백 명이 전사하여 시체가 홍주천변과 남산일대에 흩어져 방치되었다가 1949년에 항일의병의 유골임이 밝혀져 이곳에 모셔졌다. 사당인 창의사(彰義祠)900의사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위키밲과]




















창의사









홍주의병기념탑
































들꽃사랑방

들꽃사랑방은 인터넷을 찾아보면 수목원, 식물원으로 되어 있고,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생태탐방로연계 야생화관광자원 공모시범사업대상으로 선정된 힐링 체험프로그램코스 중 하나란다.















매봉재




홍주성천년여행길 9.8km, 제2부 매봉재-홍주읍성까지 2.3km

http://blog.daum.net/sansol/43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