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솔계획

금정산(金井山/801.5m) 금정산성(金井山城)일주 17.3km 2011-05-12

산솔47 2011. 5. 2. 19:30

조선시대의 석축산성으로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금정산성

 

 

예전에는 동래산성이라고 불렸던 금정산(金井山)의 금정산성!

성곽일주 17.3km

조선시대의 석축산성으로 둘레 17,336m, 높이 1.5∼6m로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산성이다.

금정산성 일주는 금정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부산 금정산(金井山/801.5m) 금정산성(金井山城)일주 17.3km

2011-05-12 목요일

산행코스 :

산성고개(목장승 있는 곳)-대륙봉-전망바위-편평바위-제2망루-남문-맘미봉(605m)-헬기장-상계봉은 생략하고 제1망루(638m)-파류봉(파리봉615m)-가나안학교-얼음골-서문입구-서문-도원사사거리-도원사-전망대-사시골(부산학생교육원)-철탑-주능선-석문-제2금샘사거리-금곡동갈림길-미륵사갈림길-미륵사-미륵바위-전망대-북문갈림길-고단봉(801.5m)-북문-원효봉(687m)-의상봉(641m)-제4망루-무명안부-부채바위-제3망루-나비암-동문-산성고개

소요시간 : 17.3km/7시간

교 통 편 : 대중교통

출발기점 : 부산전철 2호선 해운대역 서면방향 2-3번 승강장

 

들머리

부산전철 2호선 해운대역에서 전철타고 서면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 온천장역에서 하차한다.

온천장역 5번 출구 버스정류장에서 203번 시내버스 타고 산성고개(안내방송: 남문)에서 내린다.

배차간격(15분), 온천장역-산성고개까지 30분

날머리

산성고개에서 203번 시내버스 타고 온천장역에서 내려 부산전철 1호선 타고 서면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 금련산역에서 하차한다.

광안리 해안으로 이동, 광안대교 야경을 구경하고 광안리에서 숙박한다.

 

 

금정산(金井山/801.5m) 금정산성(金井山城)

금정산성 일주 17.3km

동래산성이라고 불렸던 금정산(金井山)의 금정산성!

금정산성 일주는 금정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일원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축 산성으로 둘레 1만 7,336m, 높이 1.5∼6m의 우리 나라 최대규모급의 산성이다.

해발 810m인 금정산(金井山) 정상부에서 서남쪽으로 계곡을 포용하여 능선을 따라 축성되었으며, 동·서·남·북 사방의 성문과 수구문·암문 등의 시설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 성은 1703년(숙종(肅宗)29)에 경상 감사 조태동(趙泰東)이 동래 부사 박태항(朴泰恒)으로 하여금 쌓게 한 것으로서, 둘레 9,011보(步), 높이 15척(尺)이라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이전인 1667년(현종(顯宗)8 ) 통제사 이지형(李枝馨)이 왕에게 금정산성을 보수할 것을 건의 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보다 더 오래된 시기에 축성되었고 돌보지 않게 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산성은 낙동강의 하구와 동래 지방이 내려다 보이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어, 바다로 침입하는 적에 대비하기 위한 성곽임이 확실하고, 또 성의 규모나 성벽의 축조 양식으로 볼 때 처음 축성시기는 보다 앞선 시기까지도 올려 볼수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 뒤 1707년 (숙종(肅宗)33) 동래 부사 한배하(韓配夏)가 성이 너무 넓다하여 남북 두 구역으로 구분하는 중성(中城)을 쌓고 장대(將臺)· 군기고(軍器庫) 등의 시설을 보강하였다.

이후 1774년 (영조(英祖)50)에 이르러 성(城)이 너무 커서 지키기 어려워 일단 혁파하였다.

그러나 1806년(순조(純祖)6) 동래부사 오한원(吳翰源)이 성을 중수하였으며, 1824년에는 보다 적극적인 경영에 나서서 동문을 신축하였으며 서·남·북문에 문루(門樓)를 만들고 수비군을 배치하였다.

 

이때의 길이는 32리로 기록되어 있으며, 당시 숙종 이래의 산성 수축 공사의 경위를 새긴 금정산성복설비(金井算城復設碑)가 지금의 동래구 장전동에 건립되었다.

이 산성에는 산성별장(山城別將) 한사람과 군관(軍官) 두사람, 진리(鎭吏) 두사람, 지인(知印) 두사람 및 사령(使令) 4명이 배치되어 있었다.

동쪽 성벽은 산꼭대기부터 500∼600m의 분수령을 따라 험준한 지형과 암벽을 아용하여 요새를 이루고 있다.

서쪽 성벽은 산꼭대기에서 구포방면의 능선과 계곡을 건너 동쪽 성벽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벽은 이곳에 많은 화강암을 자연석 그대로 1.5∼3m의 높이로 지형의 굴곡과 고저에 따라 쌓았다.

성벽의 요소 요소에는 포루와 암문을 설치하였다.

설치 당시 성내에는 중군소(中軍所)와 군기고(軍器庫)· 산성창(山城倉) 등 수비에 필요한 건물과 군량·군기가 마련되고,국청사(國淸寺)·해월사(海月寺)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국청사만이 남아 있다.

 

이 산성은 약 4㎞의 성벽이 잔존하고 있으나, 조선 후기에 도성과 그 주변의 대규모 방어 시설을 충실히 하는 과정에서 경영된 우리나라 최대의 산성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으며, 1972년 동문과 남문이, 1974년에 서문과 수구문 및 망루가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