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정보

수원화성(華城) 성곽둘레길

산솔47 2011. 12. 7. 10:38

수원화성(華城) 성곽둘레길

 

 

수원화성(華城)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선왕인 영조의 둘째왕자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의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의 팔달산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수원화성은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1793)을 지침서로 하여,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1794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9월에 완공되었다.

 

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로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로 되어있다.

수원화성은 축성시의 성곽이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북수문(화홍문)을 통해 흐르던 수원천이 현재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고, 팔달문과 장안문, 화성행궁과 창룡문을 잇는 가로망이 현재에도 도시 내부 가로망 구성의 주요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등 200년전 성의 골격이 그대로 현존하고 있다.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 화서문 (보물 제403), 장안문, 공심돈 등이 있다. 수원화성은 1997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화성관리사무소 031-228-2716, 031-228-4403/4410

 

 

 

방어시설

대문

장안문

장안문(長安門)은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이다.

보통 성()의 남문을 정문으로 삼으나, 화성은 임금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북문인 장안문이 정문이다.

잘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은 석축에 홍예문을 냈고 그 위에 정면 5칸 측면2칸의 다포양식으로 이루어진 중층의 문루가 세워져있다.

또한 가운데에 홍예문이 나있는 벽돌로 쌓은 옹성이 있으며, 양옆에 다른 성벽보다 높이가 약간 높은 두개의 적대를 설치하였다.

장안문의 이름은 중국의 옛 왕조인 전한(前漢), (), ()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시안)에서 따온 것으로 이는 당나라 때의 장안성처럼 화성 또한 융성한 도시가 되라는 정조의 뜻이 담겨 있다.

 

팔달문

팔달문(八達門)은 화성의 남문으로, 사방팔방으로 길이 열린다는 뜻이다.

현재는 좌우의 성벽이 헐려 길이 생기고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번화가가 형성되었다.

축대위로 누각이 서 있는데 2층으로 지어져 매우 높게 보인다.

돌로 쌓은 무지개 모양의 문은 왕의 행차 시에도 가마가 드나들 수 있을 만큼 널찍하게 내고 위에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 문루를 세웠다.

문루 주위 사방에는 낮은 담을 돌리고 바깥쪽으로는 반달형 옹성, 좌우에는 적대 등 성문 방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시설을 두었다.

옹성은 우리 나라 성곽에서 일찍부터 채용되었던 방어 시설로서 서울성곽의 동대문, 전주성의 풍남문 등에서도 볼 수 있는데, 팔달문의 옹성은 규모와 형태 면에서 한층 돋보인다.

또한 팔달문은 도성의 문루처럼 우진각 형태의 지붕과 잡상 장식을 갖춘 문루로서 규모와 형식에서 조선 후기 문루 건축을 대표한다.

 

창룡문

창룡문(蒼龍門)은 성의 동문이다.

이름은 음향오행설에서 푸를 ''자가 동쪽을 의미한다는 데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크게 소실된 것을 1978년에 복원하였다.

홍예의 크기만을 놓고 볼 때는 장안문보다 더 크다.

서남으로 행궁과 1,040보 떨어져 있고, 안팎으로 홍예를 설치하였는데, 안쪽은 높이가 16척 너비가 14, 바깥 쪽은 높이가 15척 너비가 12, 전체 두께는 30척이다.

안쪽 좌우의 무사는 각각 아래 너비가 30척 높이 185촌이며, 좌우의 와장대(臥長臺)는 길이가 각각 20척이고 돌계단은 각각 14층이며 너비는 9척이다.

바깥쪽 좌우 무사의 너비는 각각 25척 높이는 18척이며, 안팎 홍예 사이의 좌우 무사는 높이가 각각 17, 양쪽 선문 안은 쇠로써 빗장을 설치하였다.

 

화서문

화서문(華西門)은 성의 서문이다.

동남으로 행궁과 460보 떨어졌으며, 홍예와 문루의 제도는 모두 창룡문과 같다.

다만 좌우의 돌 계단을 꺾이게 해서 층을 만들었다.

안쪽 좌우의 무사는 아래 너비가 각각 9척이고, 바깥 쪽은 너비가 각각 222촌이다.

홍예문 사이 좌우의 무사는 높이가 각각 18척이고 수문청은 문의 남쪽 가장자리에 있다.

서옹성의 제도는 동옹성과 같은데 높이는 11, 안쪽 둘레는 76척 정문에서 36척 떨어져 있으며 바깥 쪽 둘레는 110척이다.

안과 바깥 면 모두에 평평한 여장을 설치하고 외면에는 방안 총혈 19개의 구멍과 활 쏘는 구멍 6개를 뚫었다.

나머지는 모두 동옹성과 같다.또 보물 403호 이다.

 

수문

화홍문(북수문)

화홍문(華虹門)은 화성의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홍수를 대비하여 수원천 북쪽에 세워진 수문이다.

7개의 수문이 있고, 남수문과 달리 누각이 있다.

또 수원팔경 중의 하나이다.

 

남수문

남수문(南水門)은 현 지동시장 근처 수원천에 있는데, 수원천 남쪽에 있다. 현재 미복원이다.

 

장대와 노대

서장대 (화성장대)와 서노대

서장대(西將臺)는 팔달산의 정상에 선 망대로 사방 100리가 내려다 보인다.

정조는 이곳에 올라 군사훈련을 지켜보았다.

화성장대(華城將臺)라는 편액은 정조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노대

서장대 바로 옆에는 서노대(西弩臺)가 서있다.

서노대는 성 한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이 지은 곳으로 정팔각형꼴로 전벽돌을 쌓아놓았다.

 

동장대(연무대)와 동북노대

동장대(東將臺)는 화성 창룡문 근처에 있는 장대로, 장용영 군대의 훈련 장소로 쓰였다. 여기서 활쏘기를 할 수 있다.

 

공심돈(空心墩)

서북공심돈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은 화서문의 옆에 있는 공심돈으로, 화살과 대포를 발사할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대포를 쏠 때, 어디서 총탄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동북공심돈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은 창룡문의 근처에 있는 공심돈으로, 서북공심돈과 달리 원형이다.

높이 175, 바깥 원 둘레 122 , 벽돌로 된 부분의 두께 4, 안쪽 원 둘레 71, 내원과 외원 사이에 가운데 45촌의 공간을 비워두고, 2층 덮개판으로 둘렀다.

아래 층 높이는 73, 가운데 층 높이는 65촌인데, 모두 군사들의 몸을 숨길 수 있게 하였다.

 

남공심돈

남공심돈(南空心墩)은 팔달문의 근처에 있는 공심돈으로, 서북공심돈과 모습이 같으나 약간 더 작다.

현재 미복원이다.

 

암문(暗門)

동암문

동암문(東暗門)은 동장대의 근처에 있는 암문으로,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안쪽 너비는 7척 높이는 8척이고 바깥은 너비가 6, 높이가 75촌이다.

 

북암문

북암문(北暗門)은 동암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곳에 있으며, 방화수류정 근처에 있다.

안쪽은 너비가 46촌 높이가 65촌이고, 바깥 쪽은 너비가 4척 높이가 6척이다.

 

서암문

서암문(西暗門)은 팔달산 서장대 근처에 있는 암문으로, 입구가 꺾여 있어서 찾기 힘들다.

안 쪽의 너비는 56촌 높이는 77, 바깥 쪽은 41촌 높이는 72촌이다.

 

남암문

남암문(南暗門)은 남공심돈 근처에 있는 암문으로, 남공심돈처럼 미복원이다.

 

서남암문

서남암문(西南暗門)은 보통 암문과 달리 용도로 가기 위한 암문이다.

그래서 누각이 있다.

 

각루

동북각루(방화수류정)

동북각루(東北角樓)는 화홍문 바로 옆에 있으며, 용연이라는 연못 위에 있다.

화성의 시설물 중에서도 아름다워 방화수류정이라고도 한다.

 

동남각루

동남각루(東南角樓)는 남수문 바로 옆에 있으며, 높은 곳에 위치해 주위를 관찰하기가 쉽다.

 

서남각루(화양루)

서남각루(西南角樓)는 용도 끝에 있으며, 화양루라고도 한다.

 

서북각루

서북각루(西北角樓)는 화서문 옆에 있으며, 동남각루와 마찬가지로 높은 곳에 위치해 주위를 관찰하기가 쉽다.

 

봉돈

봉돈(烽墩)은 봉화를 올리는 시설로, 다섯 개의 연기구멍이 있다.

밤에는 불,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냈다.

 

포루(砲樓)와 포루(鋪樓)

포루(砲樓)와 포루(鋪樓)는 헷갈리기 쉽다.

포루(砲樓)는 공심돈과 비슷하게 치성처럼 돌출시킨 시설이고, 남포루(南砲樓), 동포루(東砲樓), 북동포루(北東砲樓), 북서포루(北西砲樓), 서포루(西砲樓) 등이 있다.

 

포루(鋪樓) 치성 위에 누각을 세운 것이다.

동북포루(東北鋪樓), 동일포루(東一鋪樓), 동이포루(東二鋪樓), 북포루(北鋪樓), 서포루(西鋪樓)등이 있다.

 

()

동이치

치는 성을 돌출시킨 이며, ()자 모양으로 만들었다.

()라는 이름은 ''이란 뜻으로 본래 꿩은 제몸을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한다는 까닭에서 그 이름을 땄다.

남치(南稚), 용도일·이치, 서일치(西一稚), 서이치(西二稚), 서삼치(西三稚), 동일치(東一稚), 동이치(東二稚), 동삼치(東三稚) 등이 있다.

 

적대(敵臺)

적대는 치와 비슷한 시설이며, 팔달문과 장안문 양 옆에 각각 두 개씩 있다.

북서적대(北西敵臺), 북동적대(北東敵臺), 남서적대(南西敵臺), 남동적대(南東敵臺)가 있다.

그 중 남서적대와 남동적대는 미복원이다.

 

기타시설

여민각

여민각(與民閣)은 화성 중심부에 있는 종각이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소실됐다가 2008년 복원됐다.

이름은 시민과 함께 한다는 뜻으로 붙였다.

1231일 밤에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제야의 타종 행사가 2008년부터 열리고 있다.

 

성신사

성신사는 화성을 지켜주는 신을 모시는 사당이다.

 

효원의 종각

효원의 종각은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효심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수원시가 1991년 만들었다.

일반인이 1.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효도를 다짐하며 2.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바라고 3. 자신의 발전과 소원 성취를 기원하며 3번 타종할 수 있다.